엽기 살인범의 수기에 매료된 푸코 도대체 뭐가 담겼기에...

입력 2008-11-26 06:00:00

나, 피에르 리비에르/미셸 푸코 지음/심세광 옮김/앨피 펴냄

1835년 6월 3일, 프랑스 노르망디의 작은 농촌에서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21세의 젊은 농부 피에르 리비에르가 임신 6개월인 어머니와 18세의 누이, 어린 남동생을 낫으로 끔찍하게 살해한 것이다. 리비에르는 도주했다가 한 달 뒤 체포돼 수감돼 재판을 받았다.

국왕은 그가 광기에 휩싸여 범행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사형을 종신금고형으로 감형했고, 리비에르는 1936년 3월 구치소 내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

흥미롭게 그는 15일간에 걸쳐 장문의 수기를 집필했다. 미친 사람이 전적으로 혼자 힘으로 수기를 쓸 수 있을까. 이 수기는 130년이 흐른 뒤 '광기의 역사'의 미셸 푸코(1926~1984)를 중심으로 한 콜레주 드 프랑스의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 책의 제목 '내 어머니와 누이와 남동생…을 죽인 나, 피에르 리비에르'는 그 수기의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이 책은 재판서류를 비롯해 법의학 감정서, 신문기사, 리비에르 수기를 수록하고, 연구자들이 분석한 논평과 1971년 푸코의 제안으로 시작된 세미나의 결과를 담고 있다. 범행부터 재판, 감형에 이르는 자료를 시간 순서로 배열하고 있다.

푸코가 이 살인범에 매료된 것은 담론 때문이다. 판사와 검사, 중죄재판소의 재판관과 법무부 장관, 마을 사람들과 면장 등 사건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이어진 담론의 갈래는 1835년 당시의 정신의학, 재판제도, 왕정시대의 정치 정세가 서로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푸코의 '광기의 역사'(1961) '지식의 고고학'(1969)과 '감시와 처벌'(1975)의 중간(1973년)에 위치하며 그의 지적 사유에서 빠져 있었던 중요한 한 고리를 복원해준다. 정신의학의 권력과 사법의 고전적인 역할에 대한 재검토와 정치참여의 욕망을 느끼던 그가 이론과 실천사이에서 고민하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532쪽, 2만3천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