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만큼 계에 익숙한 국민은 드물다. 오죽하면 둘이 만나면 술을 마시고 셋이 모이면 화투를 치고 넷이 모여 계를 만든다는 말이 나왔을까. 상호부조 가운데 품앗이나 두레가 노동력을 빌려 주고 빌려 받는 구조였다면 계는 현실적인 이익과 사교를 목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그래서 계는 오늘날에도 그 면면이 이어져 오고 있다.
근래 계가 성행한 것은 1960, 70년대였다. 이렇다 할 서민 금융기관이 마땅치 않던 시절 계는 서민들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가장 만만한 재테크 수단이었다. 매달 일정한 금액을 불입하다 뒤늦은 차례에 곗돈을 타게 되면 목돈을 손에 쥐면서 금리도 쏠쏠했다. 반면 급전이 필요해 일찍 곗돈을 타게 되면 그만큼의 고금리를 부담해야 했다. 돈을 모으려는 사람이나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서로 이길 수 있는 윈-윈 구조를 갖췄던 셈이다.
하지만 이런 계는 전형적인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 구조였다. 늦게 타는 사람은 높은 수익률과 함께 높은 위험도 감수해야 했다. 친목계가 성행했던 60, 70년대 '계주 잠적'이란 기사는 신문의 단골 메뉴였다. 곗돈을 내지 못하는 사람이 나오면 깨질 수도 있었다.
서울 강남에서 '다복회'란 계가 깨져 난리가 났다. 오고 간 곗돈이 2천억 원을 넘어선다니 깨져 난리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계원 300여 명 가운데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가족들이 상당수라는 증언도 흥미롭다. 그래서인지 이번 계 사건은 여느 때와 양상이 사뭇 다르다. 보통 계가 깨지면 계원들이 내 돈 돌려 달라며 울고불고 아우성일 터인데 이번 사건은 그 반대다. 소액 계주들은 아우성인데 정작 피해 금액도 클 사회 지도층은 대외 접촉조차 피하고 있다.
'다복회'에는 고위공직자 정치인 경찰간부 군장성 법조계 재벌 등 사회지도층 인사 부인 및 친인척 20여 명이 가입했고 이 가운데 일부가 정치자금 형성 세금 탈루 등 '자금 세탁을 위해 가입했다'는 보도가 이들이 속으로 끙끙거려야 할 이유를 짐작하게 해 준다.
계주 윤모 씨 또한 '다복회는 자금세탁 공장'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계원들에게 흘리고 다녔다고 한다. 경찰이 이번 사건을 철저히 수사해 계를 다시 서민 몫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정창룡 논설위원 jc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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