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 것이 감사할 때가 있다. 그 이유야 많겠지만, 무엇보다 큰 이유가 '새로운 느낌'을 받을 때이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 아하 이런 것이구나 하고, 똑같은 사실을 두고 몇 년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것을 전해 받을 때, 새삼스럽게 나이 듦을 기뻐하곤 한다.
이런 사실을 처음 느꼈을 때는 대학시절이었다. 나는 고교 시절부터 꽤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까지 카라얀이나 번스타인의 음악을 경험하러 다녔으니. 고교 시절 나는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며, 단조가 주는 음색에 심취해 슬픔을 즐겼다고나 할까. 비장미와 함께 장엄한 음색을 뿜어내는 그의 음악을 들으며 나는 한없이 편해지고, 위무받았다. 그런데 대학을 들어와 외톨이로 지내던 고교 시절과는 달리, 서클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들은 베토벤은 완전히 달랐다. 아뿔싸!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을 들으며 춤을 추고 싶은 것이 아닌가? 특히 2악장을 들으면서는 왈츠를 들을 때보다도 더 강하게 '춤욕'(?)을 느낄 때도 있었다.
이뿐인가. 중학교 시절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읽으며 동네 형으로부터 위협받던 싱클레어의 언행에 공감했던 나는, 고교시절에는 싱클레어가 산책길에서 만난 한 여인에 대해 번민하는 것에 크게 공감했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학생들 수업 시간 자료 활용을 위해 내용을 정리할 때는, 또 느낌이 달랐다.
이런 '느낌의 변화'는 나이가 들면서 더 넓어지고 확대됐다. 최근의 일도 그랬다. 베트남 호찌민시의 최고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의 경험이다. 캐나다 밴드들이 수준 높은 공연을 연중무휴로 하는 그곳에는 흥이 많은 손님들을 위한 작은 무대도 있다. 몇 번 가본 경험으로는, 그 무대는 항상 젊은 남녀들의 놀이터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무대에 첫 손님으로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사십대는 되어 보이는 중년 여성이었다. 그것도 좀 과장을 하자면, 위로보다는 옆으로 더 넓어 보이는 이 뚱뚱한 인도계 여성은 악단의 음악에 맞추어서 혼자 춤에 몰입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세련된 춤도 아닌, 춤을 추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추하지 않고 너무도 아름다운 '여성성'을 느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솔직히 그랬다. 나가서 함께 춤을 추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대학시절 이런 광경을 봤으면 어땠을까? 틀림없는 사실은 지금의 느낌과는 달랐을 것이다. 고교 시절에 봤으면 추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칠십 혹은 팔십이 되어서 느끼는 세상은 어떨까? 짐작이야 가지만, 그 세계에 대해서 두렵지 않은 마음으로 세월을 맞고 싶다.
서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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