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닥 나온 귀밑머리, 작고 매혹적인 입술, 좋은 어깨, 잘록한 허리…. 거기에 치마 끝으로 보일 듯 말듯 나온 버선발은 여인의 춘정을 사실적으로 엿보게 한다.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이다. 여인의 속내까지 살포시 드러낸 이 그림은 도저히 우악한 남자의 솜씨로 보기 어렵다. 그래서 나온 것이 신윤복이 여자가 아닐까라는 가정이다.
지금 '신윤복 바람'이 거세다.
'바람의 화원'이란 소설과 동명의 TV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 '미인도'를 소장하고 있는 서울 간송미술관에는 관람객들로 넘쳐나고 있다. 여기에 전윤수 감독의 영화 '미인도'까지 가세했다.
화원 가문의 딸 윤정. 어려서 탁월한 그림솜씨로 오빠의 그림을 대신 그려준다. 그를 김홍도를 능가하는 화원(畵員)으로 키우려는 가문의 위세에 눌려 오빠는 목을 매고, 윤정이 대신 그의 삶을 살게 된다. 남장여자 신윤복(김민선)이 된 그녀는 김홍도(김영호)의 제자로 들어가 그림 수업을 받는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시정잡배 강무(김남길)와 사랑에 빠지고, 제자의 남다른 재주를 눈여겨보던 김홍도 역시 그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제자 이상의 감정을 갖게 된다. 여기에 김홍도를 사랑하는 기녀 설화(추자현)까지 가세하면서 엇갈린 사랑의 4중주가 시작된다.
영화는 소설과 드라마와 다르다. '바람의 화원'을 원작으로 하지 않고, '신윤복=여자'라는 모티브만 따왔다. 소설과 드라마가 그림에 집중하고 있지만, 영화는 사랑, 그것도 짙은 에로티시즘을 표방하고 있다.
신윤복의 그림은 당시 풍속을 저해할 만한 요소들이 많았다. 개가 서로 교접하는 모습을 보며 희롱하는 두 여인의 모습을 그린 '이부탐춘'이나, 깊은 밤 남녀의 밀회를 엿보는 '월야밀회' 등은 산수화와 문인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춘화'(春畵)나 다름없이 은밀함이었다.
계곡에서 몸을 씻고 있는 여인들을 그린 '단오풍정'은 엿보기의 극치이다. 풍성한 가슴을 풀어헤친 여인의 모습과 함께, 계곡의 형상 또한 여인의 음부를 연상케 한다.
영화는 신윤복의 그림을 재현하고, 강무와의 사랑을 시작하는 그녀의 춘흥 또한 그림 속에 녹아들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강무와의 섹스신은 감춰진 사랑처럼 안타까운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설화와 김홍도의 섹스신 역시 격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특히 청나라 춘화를 재현하는 기녀들을 단체로 관람하는 양반들의 모습 등 아예 야하게 만들려고 작정한 듯해 보인다.
화가의 삶을 그린 영화답게 한 폭의 산수화와 같은 장면들이 더러 나온다. 특히 배에 탄 신윤복이 '미인도'를 그려 강물에 띄워 보내는 장면은 참 인상적이다.
그러나 남장한 천재화가의 시대를 거스른 삶과 사랑이란 드라마틱한 소재와 달리 영화는 상투적이다. 남장 화가는 너무나 쉽게 옷을 벗고, 그녀의 정인은 너무나 뻔하게 죽음을 무릅쓴다. 훔쳐보던 남자는 뻔하게 욕정에 휩싸이고, 그런 남자를 사모하는 기녀 또한 뻔한 질투의 화신이 된다.
때로는 과격하고, 때로는 감상적이지만 그것의 당위성은 모호하게 처리하고, 비주얼한 그림으로 다 알아서 소화하라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등장인물들의 연기가 실하지가 않고 겉도는 느낌이다. 김민선의 노출연기가 파격적이지만, 그 틀은 아쉽게도 얕다. 108분. 18세 관람가.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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