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학연'지연은 연고를 중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적 단면을 드러내 주는 코드다. 생판 초면일지라도 이 코드 중 한 가지라도 들어맞는다면 금방 마음문이 열리곤 한다. 여기에 하나 더 첨가할 만한 것이 있다. '契緣(계연)'이다. 한국 사람치고 한두 개 계에 들지 않은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보기 드물다.
계는 구성원에 따라 친구 계모임, 동창회 계모임, 반창회 계모임, 부부 동반 계모임, 친척 계모임 등으로 끝없이 분화된다. 목적별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중 주류는 친목계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는 먹자계, 쌓인 스트레스를 확 날려 버리기 위한 놀자계, 이 둘을 합친 먹고놀자계, 경비를 모아 함께 국내외 여행을 떠나는 여행계, 성형계 등 갖가지 버전으로 진화 중이다. 상조계는 말 그대로 哀慶事(애경사)때 서로 돕기 위한 것이다.
요즘 세간에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세칭 '강남 귀족계'는 친목계나 상조계 등 인간 관계를 다지는 계가 아닌 '돈' 위주의 계다. 서울 강남에서 대형 음식점을 하는 50대 여성 윤모 씨가 6년 전부터 운영해온 '다복회'는 숫제 요지경 세상이다. 계원 수 300여 명에 곗돈 규모가 무려 2천200억 원이라니…. 전현직 정치인과 고위 관료, 변호사 부인, 전문직 종사자, 연예인 등 부유층 계원들이 매달 최소 몇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씩을 곗돈으로 냈다 한다. 별세계 얘기다.
재야 역사학자 이이화 씨는 저서 '역사풍속기행'에서 계의 기원에 대해 "적어도 삼국시대부터 있었으며 18세기 이후 조선 후기에 특히 성행했다"고 썼다. 친목과 상부상조를 위한 협동조직 또는 경제조직으로서 계원의 신분'목적 등에 따라 다양한 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같은 마을의 동계, 도살업자들의 牛皮契(우피계), 달구지꾼의 車契(차계), 뱃사람들의 船契(선계), 어민들의 漁網契(어망계), 또래간의 동갑계나 같은 서당의 학계, 같은 뜻을 다지는 동지계, 어려운 일에 힘을 합치는 대동계, 족보를 만들기 위한 족보계….
전통적인 의미의 계는 거개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보다 친밀하게 엮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다복회' 라는 금박 글자가 새겨진 '빨간 수첩'을 신분의 상징처럼 자랑스레 여겼을 그들은 '多福(다복)'이 禍(화)를 부른 현실에 어떤 심정일까. 왠지 塞翁之馬(새옹지마) 고사를 떠올려 보게 되는 사건이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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