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독도] 김·미역 물질 이젠 추억으로…

입력 2008-11-13 10:16:18

▲ 물골 입구에 제주도 해녀가 쓴 것으로 보이는 낙서.
▲ 물골 입구에 제주도 해녀가 쓴 것으로 보이는 낙서. '追憶은 영원히'라고 쓰고 뒤에 이름이 보인다.
▲ 왼쪽 높이 솟은 봉우리가 탕건봉, 오른쪽이 삼형제굴바위다. 김바위는 이 둘 사이에 작은 바위다. 전충진기자
▲ 왼쪽 높이 솟은 봉우리가 탕건봉, 오른쪽이 삼형제굴바위다. 김바위는 이 둘 사이에 작은 바위다. 전충진기자

'追憶(추억)은 영원히.'

요즘은 보기 드문 삼류 신파조의 이 허접한 낙서는 물골 암벽에 흰 페인트로 굵직하게 쓰여져 있다. 낙서는 빛이 바랬지만 마음먹고 쓴 글씨로 보였다.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지만 숙소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하니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다. 언제쯤 누가 무슨 '추억'을 남기기 위해 쓴 것일까. 적어도 40, 50년은 족히 되었을 법한데, 그렇다면 낙서일지라도 역사적 낙서(?) 아닌가. 글 쓴 주인공은 누구일까. 독도 공사 왔던 인부, 아니면 독도경비대원, 그도 아니면 이곳을 쉬어간 어부일까. 페인트로 쓴 글씨임을 감안하면 공사 인부가 유력해 보였다.

호기심에 못 이겨 다음날 다시 낙서 현장에 갔다. 낙서 끝에는 작은 글씨로 희미하게 '한림면 ○○리 김춘자'라고 쓰여 있다. 제주도 해녀가 독도에 '물질'하러 와서 물골에서 자면서 남긴 흔적이 틀림없다. 거침없이 쓴 한문체가 도무지 여성 글씨로는 보이지 않는데, 무슨 잊지 못할 '추억'을 새겨두고 싶었을까.

독도의 바위 얘기를 계속하면, 탕건봉을 돌아 나오는 곳에 김바위가 있다. 김바위는 이름 그대로 예로부터 이곳을 찾는 해녀나 어부들이 김을 많이 따던 곳이다. 이곳에서는 12월 들면서부터 겨우내 김을 딴다. 이곳 김은 30㎝ 이상 자란 것들이 바위에 붙어 일렁거린다. 독도 천연산이어서 맛도 각별하다. 독도 김 맛을 보면 다른 지역에서 나는 김은 못 먹는다.

그러나 이 김은 김밥말이용으로는 사용하지 못한다. 남해 양식장의 김처럼 김발에 널어 말려 가공한 것이 아니다. 뜯은 그대로 얼기설기 한자리에 널어 말린 것이기에, 볶아서 반찬을 하거나 물에 풀어 김국을 해먹는다. 바짝 말린 독도 김은 조금만 물에 넣어도 불어나서 한 소쿠리가 된다. 독도 김을 넉넉히 풀어 끓인 김국은 속풀이로 그만이다.

독도 김은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해 있다. 추운 겨울 파도 없는 날을 기다려 김을 채취해 와서 손질하고 김발에 말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겨울철 물결이 자는 날이 드물고, 그것을 따기 위해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다. 따더라도 건조장 시설이 없다. 억지로 얼마간 따서 말리더라도 그 값어치만큼 쳐주지도 않는다.

김바위와 나란히 곶(串)을 이루고 있는 미역바위 사정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독도 미역을 먹어본 사람들은 그 맛이 기장 돌미역보다 더 좋다고 한다. 한 발씩 되는 미역은, 지난 시절 첫 손자 본 초로(初老)의 시골 영감이 5일장에서 막걸리 한 잔 걸치고 싱글거리며 건들건들 등에 지고 가던 바로 그 미역이다.

봄이 되면 비단 미역바위뿐만 아니라 독도 전체가 미역밭이 된다. 따로 어디 뜯으러 가고 할 것도 없다. 낫으로 잔뜩 베어와 바위 위에 이리저리 걸쳐 말리면 된다. 김성도 이장님이 과거 고 최종덕씨와 일할 때는 지금은 없어진 건조장에 건져다 말렸다. 그 이전에는 초벌 말린 것을 배에 싣고 울릉도로 나가 말리기도 했다.

김 이장님은 지난봄 미역 농사를 좀 했다. 말려서 울릉도에 내다 파니 ㎏당 1만원이 못 되었다. 어렵사리 말려 눈치 보며 관광선으로 실어내 ㎏당 1만원을 못 받아서는 수지가 맞지 않는 일이다. 그렇게 실망하고, 팔다 남은 것을 두 포대나 창고에 넣어뒀더니 아예 못 먹게 돼버렸다. 열흘 전 창고 미역을 바다에 쏟아버린 김 이장님은 새봄이 오더라도 미역 뜯을 생각은 아예 없단다.

더 이상 독도 김도 미역도 맛볼 수 없다. 경북도의 구상대로 앞으로 독도에 정주 시설이 마련돼 10가구 정도가 산다면 그때는 다시 독도 김과 미역을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루빨리 일본의 독도망언으로 인한 한일 두 나라 간 '총성 없는 전쟁'이 종료되고 김바위, 미역바위에 제주 비바리들의 휘파람 소리가 들릴 날을 기대해본다.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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