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문인의 숨겨진 발자취 그들의 몸짓 소중한 일화

입력 2008-11-12 06:00:00

대구 문단이야기/이수남 지음/고문당 펴냄

'따따따 따따따 주먹손으로/따따따 따따따 나팔 붑니다/우리들은 어린 음악대/동네 안에 제일 가지요.'('어린 음악대')

어린 시절, 입에 주먹 손을 갖다 대고 이 노래를 부르지 않은 이들이 없을 것이다. 노랫말과 곡을 만든 김성도(1914~1986). 그는 1934년 이 노래의 악보를 등사해 각 학교에 배부했고, 이것이 방송을 타면서 전국적인 노래가 됐다. 1957년 아동문학가 창주 이응창과 '대구아동문학회'를 창립하고 '안데르센동화전집' '그림동화전집' 등을 직접 번역 출판해 한국 아동문학계에 기념비적인 업적을 쌓았다.

그러나 그의 삶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서울대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장남을 교통사고로 잃었고, 고혈압으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할 때 시지동 아파트 붕괴사고란 끔찍한 일을 당했다.

1983년 그가 병석에 누워 있을 때 아파트 밖에서 노래 소리가 들렸다. 100원 씩 받고 아이들을 태워주는 놀이목마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어린 음악대'였다. 옆에 앉았던 부인이 "여보, 당신이 작곡한 노래가 들려요"라고 했다. 그러나 말이 불편한 그는 대답 대신 알았다는 뜻으로 싱긋 웃기만 했다.

한때 대구문단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대구 문단은 태생적으로 6.25 전쟁이 빚은 피란문인의 집결지였다. 오상순, 조지훈, 박두진, 구상, 최정희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대구에서 피난살이를 했다.

그러나 정전으로 그들이 빠져나가자 일시에 진공상태가 되었다. 전국 최초의 '죽순시인구락부'가 있었음에도 대구의 문단은 제대로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가 1970년대 산업화 시대와 함께 활기를 되찾아 현재 700여 명의 문인이 등록하고 있을 정도로 성장, 발전했다.

이 책은 대구 문단의 야사다. 힘든 시기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서로를 끌어안고 걸어온 대구 문인 71명의 발자취를 담고 있다.

아동문학가 창주 이응창, 1930년대 한국 휴머니즘 문학의 기수 최태응, 희곡 '무지개'로 전국을 강타한 이만택, 깔끔한 논변의 시인 김춘수, 지성미 넘치는 신동집 등 일화로 또는 작품으로 대구 문단에 굵은 선을 그은 이들이다. 이외 조기섭, 이장희, 서석달, 김윤식, 권기호, 송일호, 도광의, 권국명, 구활 등의 삶과 문학을 담고 있다.

71명 작가들의 개인적 삶을 그리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대구 문단의 역사를 한 눈에 그려볼 수 있는 책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 등장하는 하나의 일화, 하나의 몸짓이 그냥 사라지지 않고 소중한 마디와 거멀못이 되면서 향토 문단의 견고한 기초가 되었다"며 "비록 이글이 대구 문단의 정사(正史)는 아니라 하더라도 정사에 버금가는, 가장 인간적인, 가장 문학적인 것이리라는 생각도 없지 않다"고 적고 있다.

지은이는 1964년 매일문학상으로 등단해 '목마와 마네킹'(1979년), '바람개비'(1984년), '심포리'(2007년) 등 소설집을 냈으며 대구문학상(1988년), 대구시문화상(2000년)을 수상했다. 349쪽. 1만2천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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