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대사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 검프가 미국 대륙을 끝없이 달리는 장면이 있다. 베트남전이 끝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제니를 만났지만, 그녀가 다시 떠나자 절망하며 동부의 끝에서 서부의 해변까지 왕복하며 달린다.
검프가 달릴 때 흐르는 곡이 가수 잭슨 브라운의 1978년 앨범에 수록된 '허공에의 질주'(Running on Empty)이다. '나는 지금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 모르겠어. 그저 달리고 있을 뿐, 허공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을 슬퍼하며 미국 대륙을 달려가는 검프의 마음과 잘 닮아 있다.
그런데 이 곡이 미국 대통령선거가 끝난 후 구설수에 올랐다. 잭슨 브라운이 매케인 캠프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자신의 곡을 매케인이 사전 허락 없이 무단으로 선거광고에 사용했다는 것이다.
시드니 루멧 감독의 영화 '허공에의 질주'(1988년)도 반전운동으로 도망자 신세인 부모와 아들의 갈등을 통해 아픔이 대물림되는 것을 그려주고 있다. '허공'은 마치 영원히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미국의 꿈을 은유하고, '질주'는 그래도 신념을 가지고 계속 나아가야 하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잭슨 브라운이나 시드니 루멧은 전형적인 민주당 지지자들로, 저항성향을 지닌 대중 예술가들이다. 미국 대선 후보들이 유세에서 어떤 음악을 틀든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음에도 잭슨 브라운이 발끈한 것은 정치적 성향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곡은 오바마 당선인에게 더 어울린다. 그는 케냐 출신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의 혼혈아로 태어나 어린 시절 손가락질을 받던 소년이었다. 흑인 아버지, 인도네시아 養父(양부), 인도네시아와 미국의 변방인 하와이에서 생활하며 다양한 인종의 이복형제들 속에서 부대끼었다.
누가 봐도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에서 그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대통령에 당선됐다.
다양한 색깔의 인종이 모여 무지개 세상을 이루자는 45년 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꿈꾸었던것이 더 이상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몸으로 보여주었다. 또한 절망적인 허공에의 질주도 함께 종지부를 찍었다.
김중기 문화팀장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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