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수도권 규제 해제는 지방산업의 해체

입력 2008-11-06 06:00:00

지난달 30일 정부가 발표한 수도권 규제 해제는 한마디로 충격적이다. 이 조치로 수도권 내에서 96개 첨단업종의 기존공장 내 증설범위는 물론 이 중 14개 첨단업종은 100% 이전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이전은 지방에서 수도권으로의 이전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발표시기도 미묘하다. 현재 국가가 겪고 있는 금융위기의 한가운데에서 이 조치를 발표함으로써 정부는 정당성의 구실을 찾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한시적이라든지 일몰조치라든지 등의 단서를 달 만한데 어디에도 그런 구절은 없다. 계속 간다는 뜻이다.

벌써 3, 4년 전 일이다. LG 전자가 당초 계획된 구미 TFT-LCD 공장을 수도권으로 옮겼을 때였다. 누군가는 LG의 그런 의도가 80년대의 실패(?)를 만회하겠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즉 당시 삼성은 수원에 반도체 공장을 세웠는 데 비해 LG는 구미를 선택하였고 이후 지가상승분만 따져 보더라도 LG는 땅을 치며 후회했을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이것은 왜 수도권과 지방이 동일한 바탕에서 경쟁할 수가 없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때는 그래도 정부가 예외적 조치라며 2008년 말까지로 일몰규정을 두었다. 그런데 일몰은 다시 日出(일출)이 되고 말았으며 규제를 푸는 허리띠의 구멍도 크게 늘려 놓았다.

이제 제2, 제3의 LG가 지방을 탈출하여 서울로 이전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게 됐다. 대기업일수록, 외국인투자기업일수록, 첨단업종일수록 그러한 유혹은 더 강할 것이다. 사실 공장총량제로 알려진 수도권 진입장벽은 지금까지 유일하게 그러한 유혹을 억누르는 차단기 구실을 해 왔다. 특히 외국인투자기업은 생활환경이나 자녀교육 문제를 들어 서울에서 운전 1시간 내에 위치한 공장을 선호하기 일쑤였다. 이제 이들은 지방기업과 똑같은 각종 특전을 받으며 스스럼없이 수도권으로 몰려들 것이다. 참으로 지방의 산업해체가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외국의 예를 돌아보아도 한국처럼 지방과 수도권을 평등(?)하게 대우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가장 좋은 예가 영국이다. 영국은 전국을 지원대상 3개 권역과 일반지역으로 구분하여 기업투자에 대한 지원을 차별화하고 있다. 즉 지원대상권역 중 투자환경이 가장 열악한 지역(Tier 1)에는 국내외 기업을 구분하지 않고 정부가 투자자본의 최고 35%까지 현금을 무상으로 지원하며 금융알선, 인력훈련센터 건립, 행정 지원 등 폭넓은 지원을 편다. 반면 런던이나 대도시 인근지역 즉 우리의 수도권에 해당하는 일반지역에는 이런 혜택이 전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수도권 진입장벽을 이유로 외국인 기업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는 수도권이든 지방이든 차이가 없다. 첨단업종일 경우 법인세, 지방세, 관세 등 각종 세제혜택은 물론 땅값 인하까지도 가능하다. 이런 수도권에 대한 인센티브를 그대로 둔 채 진입장벽까지 풀어 버리면 지방은 더욱 불리해질 것이 뻔하다.

영국모델을 참고한다면 정부 정책은 그 반대가 되어야 한다. 즉 수도권 공장총량제라는 진입장벽을 풀기 이전에 적어도 각종 투자 인센티브의 틀이라도 조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즉 수도권 기업에 갈 인센티브를 지방으로 돌리는 것은 물론 지방기업에 현재보다 더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투자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외국인 투자가와 국내투자자 간에도 어떠한 차별이나 역차별도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방기업의 사회적 비용을 줄여 주려면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 앞서 지적한 대로 지방의 교육, 문화여건을 개선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예를 들면 특목고나 자립형 사립학교들을 지방에 우선 설립하도록 정부가 지원해 주는 것이다. 문화와 여가시설에 대한 차별적 세제 혜택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수도권과 지방, 제로섬이 아닌 플러스섬의 게임이 될 날을 기대해 본다.

정동식 (무역투자연구원 원장, 전 경북통상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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