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대란…원어민 교사 '還國대란'

입력 2008-11-05 09:23:11

"이렇다면 고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2년 전 영어권 국가에서 지역 한 대학 교수로 온 원어민 교수 J(51)씨는 요즘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내년 3월이면 대학 측과 재임용 계약을 해야 하지만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귀국할지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그는 "연봉은 그대로인데 환율 때문에 실수입은 20~30%가량 줄어 본국의 가족에게 보내주는 돈이 많이 줄었다"며 "원/달러 환율이 어떻게 더 요동칠지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가파른 환율 상승으로 한국에서 상대적 수입이 줄어들게 된 원어민 교사들이 술렁이고 있다. 재계약을 꺼리는 원어민 교사들부터 일찌감치 본국행을 택하는 사설학원 강사들까지 있다. 특히 현지에서 융자를 받아 대학을 다녔던 원어민 교사들은 한국에서의 수입으로 빌린 융자금을 갚고 있는 터라 치솟는 환율은 큰 악재다.

지난 해부터 수성구의 한 영어학원에서 일하고 있는 원어민 강사 A(26·미국)씨는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하고 있다. A씨의 월급은 300만원. 주말 1대 1 영어전화 아르바이트까지 합하면 400만원 정도 번다. 하지만 본국에서 대학 때 융자받은 5만달러를 갚기에는 버겁다. 그는 "지난 해에는 환율이 1천원 안팎이어서 월 4천달러 정도 벌었지만 요즘에는 환율이 1천300원까지 올라 3천달러 조금 넘는 수준이 됐다"며 "지난해는 미국에 3천달러 가량 보냈지만, 현재는 턱없이 못 미친다"고 말했다.

사설학원 원어민 강사 B(25·캐나다)씨는 올해 계약 기간이 끝나면 일본으로 직장을 옮길 채비를 하고 있다. 일본 경우 최근 엔고/달러 약세 영향으로 같은 월급을 받아도 본국으로 보내는 달러는 더 많기 때문. B씨는 "일본의 물가가 한국보다 많이 비싸다고 하지만 엔화 강세가 지속된다면 일본행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교육계는 원어민 교사 붙잡기에 고심하고 있다. IMF 당시 환율이 2천원대로 오르자 원어민 교사들이 대거 귀국해 낭패를 본 경험이 있기 때문. 대구시교육청 관계자는 "아직까지 지역 초·중·고교에 근무하는 원어민 교사들 사이에 눈에 띌만한 동요는 없다"면서도 "하지만 내년 3월 재계약 시즌까지 환율이 안정되지 않으면 이탈자가 생길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사설 학원들은 비상이 걸린 상태다. 어린이전문 영어회화 학원들은 원어민 강사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보니 환율 추이를 예의 주시하는 모습이다. 대구 수성구 한 학원의 경우 지난주 한 원어민 강사가 슬그머니 본국으로 돌아가 부랴부랴 새 강사를 모시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학원 관계자는 "1년 단위로 원어민 강사들과 계약을 하는데 환율이 계속 오른다면 제대로 된 원어민 강사를 확보하기 어렵다"며 "환율을 감안해 보수를 주는 방법을 고려해야 할 판"이라고 전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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