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을사조약 강제 체결에 맞서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을 발표했던 위암(韋庵) 장지연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위암장지연문고'가 4일 영남대에서 문을 열었다. 영남대는 이날 오후 중앙도서관 9층에서 (사)위암장지연선생기념사업회 이사로 위암의 장손인 장재수씨 등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소식을 열었다.
이날 문을 연 문고에는 장지연 선생의 손때가 묻은 서적 가운데 유족들이 기증한 250종, 704권의 책이 보관되어 있다. 이 중에는 장 선생이 주필 및 사장으로 재직했던 '황성신문'(1898년 창간·1910년 폐간)과 주필로 재직했던 국내 최초 지방지인 '경남일보'(1909년 창간), 격일간지 '시사총보'(1899년 1월 창간·1899년 9월 폐간)도 있어 우리나라 근현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전망이다.
이 밖에도 삼국시대부터 조선 인조 때까지 애국명장을 전기로 엮은 6권 3책의 목활자본 '해동명장전'(1794년·홍양호 저)과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최초의 서양법학서인 '공법회통'(公法會通·1896년·윌리엄 마틴 역), 조선 후기 문인 차좌일(車佐一)의 시집으로 조선후기 시풍의 변화와 경향을 보여주는 '사명자시집'(四名子詩集·1914년), 중국 남송의 고승이자 대선사인 대혜(大慧) 보각선사(普覺禪師)의 불교서한집 '대혜보각선사서'(1568년·장흥 천관사 간행) 등도 보관되어 있다.
경북 상주 출신의 항일언론인이자 유학자인 장지연 선생은 1905년 11월 자신이 사장으로 있던 황성신문에 사설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뒤 투옥됐으며,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다. 1909년에는 '경남일보'에 매천 황현(梅泉 黃玹)의 절명시(絶命詩)를 실었다가 신문이 정간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이날 개소식에 참석한 위암의 장손 장재수 이사는 "할아버지의 손때 묻은 책들이 반백 년이 지나서 다시 빛을 보게 돼 무척 다행"이라며 "앞으로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언론사 연구, 나아가 한국학 정립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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