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휘의 교열 斷想] '마냥' 웃고

입력 2008-11-03 06:00:00

"이날은 소녀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 세수를 하고 있었다. 분홍 스웨터 소매를 걷어 올린 팔과 목덜미가 마냥 희었다. 한참 세수를 하고 나더니 이번에는 물속을 빤히 들여다본다." 이성에 눈떠 가는 사춘기 소년 소녀의 아름답고 슬픈 첫사랑의 경험을 서정적으로 그린 황순원 작 '소나기'의 한 대목이다.

소설 인용문에 나오는 '마냥'은 글쓰기에 심심찮게 활용되는 단어이지만 붙여 쓰기와 띄어쓰기에 따라 품사가 달라진다.

"어쩌다 안개 속을 비추던 그 은은한 안개등은 먼 바다의 등대불빛 마냥 멀리서 더 아름다웠다." "이렇게 마냥 걷다간 해가 지기 전에 그곳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불과 몇 해 전 일이지만 이제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마냥 아득한 기억이 됐다.""모처럼 친구들을 만나 마냥 웃고 떠들었다." "가을, 청명한 하늘과 향기로운 바람에 마냥 가슴이 두근거리는 계절입니다."

'마냥'은 부사로 쓰인 것은 맞지만 조사로 쓰인 것은 잘못된 표기이다. 부사로서의 '마냥'은 '언제까지나 줄곧'(그들은 아무 말 없이 마냥 걷기만 하였다) '부족함이 없이 실컷'(마냥 먹어 대다) '보통의 정도를 넘어 몹시'(그 사람은 성격이 마냥 좋기만 하다)의 뜻으로 띄어 쓴다. 반면에 첫 번째와 세 번째 인용문에 나오는 '등대불빛 마냥'과 '시절 마냥'의 '마냥'은 단순히 띄어쓰기를 하면 되는 부사가 아닌 조사로서 '등대불빛처럼'과 '시절처럼'같이 '처럼'의 잘못이다. "가시 돋친 고슴도치처럼 날을 세웠던 아이들"로 쓰인다.

'마냥'과 같지는 않지만 '만큼'도 품사에 따라 붙여 쓰기도, 띄어쓰기도 해야 한다.

"순작용만큼이나 역작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나도 너만큼 달릴 수 있다." "부모님에게만큼은 잘해드리고 싶다."의 '만큼'은 체언이나 조사에 붙어 '정도가 거의 비슷함'을 나타내는 부사격 조사로서 붙여서 쓴다.

이와는 달리 "일한 만큼 거두다." "먹을 만큼 먹다." 에서의 '만큼'은 용언 어미 '-ㄹ, -을, -ㄴ, -은' 뒤에 쓰이어 '그와 같은 정도나 한도'를 뜻하는 의존명사로 띄어 쓴다. 아울러 "이번에는 그가 손댄 만큼 제대로 고쳐졌겠지." "발이 큰 만큼 신도 크다."에서처럼 용언 어미 '-ㄴ, -은, -는, -던' 뒤에 쓰이어 '그와 같은 내용이 근거가 됨'을 뜻하는 '만큼'도 의존명사로서 띄어 쓴다.

이처럼 띄어쓰기와 붙여 쓰기에 따라 잘못된 표기가 될 수도, 품사가 달라질 수도 있음을 유념해 뜻이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는 글쓰기를 하자.

성병휘 교정부장 sbh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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