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영도(가명·54)씨는 요즘 우편물 찾기가 두렵다. 각종 고지서 사이에 끼어 있는 청첩장 때문이다. 이달 들어 집으로, 회사로 날아온 청첩장이 10여통. 지난 주말과 휴일인 25, 26일에만 다섯 곳의 결혼식장을 다녀왔다. 거리가 멀어 축의금만 부친 곳도 두 곳이다. 10월 한 달 경조사비만 60만원을 썼다. 김씨는 "아무리 아껴도 생활이 빠듯한 형편인데 밀려드는 경조사에 허리가 휠 지경"이라고 했다.
답답한 서민경제가 경조사에도 한숨 짓고 있다. 한 달에 수차례씩 겹치다 보니 경조사 비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역 예식업계에 따르면 대구시내 주요 결혼식장은 올 연말까지 대부분 예약이 끝난 상태. 여기에 지난해 11, 12월 태어난 황금둥이의 돌잔치 '러시'가 이어지면서 모두가 경조사 지출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공무원 이모(48)씨의 책상 앞에 놓인 달력의 주말과 휴일난은 결혼식 일정으로 빼곡하다. 10월에만 8건. 11월 상황도 마찬가지다. 벌써 4건의 결혼식 일정이 잡혀 있다. 여기에 부하 직원의 아이 돌잔치도 2건이나 있다. 이씨는 "날씨가 차가워지면서 부음소식도 하루가 멀다 하고 들어온다"고 했다.
자영업자 김모(52)씨도 어서 빨리 겨울이 왔으면 하고 바란다. 사무실로 날아온 경조사 소식은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고 있기 때문. "일주일에 서너 곳씩 결혼식을 쫓아다니다 보니 빚까지 내야 할 판"이라며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안 주고 안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고 했다.
한번에 5만원은 기본이고, 친분이 있으면 10만원은 내야 체면치레를 할 수 있다는 분위기 때문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직장인 최모(40)씨는 "월급은 거의 오르지 않았는데, 몇 년 새 경조사비는 두배 가까이 치솟은 것 같다"며 "직접 찾아가는 곳은 밥이나 기념품을 받으니 5만원을 넣고 봉투만 전하는 곳은 3만원만 건넨다"고 했다.
그러나 자칫 경조사비 때문에 얼굴을 붉히는 경우도 생겨 액수의 많고 적음을 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회사원 김모(36)씨는 갑작스레 많아진 경조사로 골머리를 앓다가 '받은 만큼' 하기로 하고 자신의 결혼식 때 받은 축의금 장부를 꺼내 직장 상사의 아들 결혼식에 똑같은 금액을 부조했다 낭패를 당했다. 4년 전 결혼하면서 그에게서 받았던 축의금이 3만원이어서 같은 액수를 냈다. 그런데 결혼식 이후 상사는 "물가가 올랐는데 그럴 수 있느냐"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이래저래 경조사비 때문에 허리를 졸라매야 하는 서민가계에 11, 12월 '황금둥이'들의 돌잔치도 수천건이나 돼 초대받은 서민들은 또 한번 주머니를 털어야 할 형편이다. 지난해 대구시에 출생신고한 신생아는 2만4천700명. 그 중 11, 12월에 돌을 맞는 아이는 3천550명(대구시 통계)으로 시내 주요 돌잔치 장소가 예약이 끝난 상태다. 게다가 금값까지 크게 올라 금반지(순금 3.75g) 하나를 사려면 16만원(소매가 기준) 정도는 줘야 한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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