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요? 골목 안으로 쭉 들어오면 전봇대 있는 집이라요."
대구 중구 남산동 서부교회 인근에 자리 잡은 채종민(50)씨의 집은 꾸불꾸불한 골목 안에 있었다. 기억 속을 헤집어도 떠오르지 않는, 나무로 만든 전신주. 집 위치를 알려주던 채씨가 전신주를 강조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여기요?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5만원짜리라요. 이것도 내년 되면 나가야 된다는데…."
30평 남짓해 보이는 집은 마당까지 딸린 곳이었다. '주렁주렁'은 아니더라도 당장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익은 석류가 달린 나무 한 그루도 있는. 채씨는 갓 무릎 수술을 마친 흔적이 역력할 만큼 유난히 다리를 끌었다. 하지만 취재진의 눈에 먼저 들어온 건 다리를 끌며 발걸음을 옮기는 채씨가 아닌 마당과 옥상 그리고 방안 곳곳에 있는 의자의 개수였다.
'집 안에 웬 의자가 이렇게 많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안녕하세요"라며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는 사람은 채씨의 부인 신형숙(40)씨였다. 신씨 역시 무릎이 안 좋다고 했다. '설마'했더니 '맞다'고 했다. 부부가 같은 증상을 갖고 있었다.
'무혈성괴사증'. 피가 뼈로 통하지 않으면서 뼈가 썩어가는 증상. 지난 7월 무혈성괴사증으로 수술을 받았던 채씨는 양반다리로 앉지 못했다. 어딘가에 걸터앉아야 가장 좋았다. 방 안 곳곳에 의자가 놓인 것은 당연지사. 부엌, 옥상, 마당까지. 재래식 화장실이 어울릴 집이었지만 좌변기가 설치된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그래서였다. 방바닥은 손으로 쓸면 회색빛이 선명하리만치 먼지가 쌓여 있었다. 두 내외가 쪼그려 앉아서는 일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손빨래를 하기 위해 따로 선반이 마련돼 있을 정도였다.
"무릎요? 그나마 제가 병원에 있을 때 무릎이 아프다면서 검사해본 게 다행이었지요. 빨리 발견했으니까 치료만 잘 받으면 된다는데…."
취재진의 말을 제때 알아듣지 못해 되묻는 게 버릇이 된 채씨의 귀에는 보청기가 붙어있었다. 청각장애에 무혈성괴사증. 설상가상으로 부인마저 같은 병을 갖고 있다며 절로 한숨을 쉬는 내외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생계급여와 장애수당 90여만원으로 생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신씨의 병원비로 600여만원이 든다고 했다. 무릎 연골이 닳아 '연골배양 이식수술'을 하면 나아지지만 또 문제는 돈이었다. 두 내외만 산다면 모자라지 않을 것 같은 돈이지만 이들에게도 중학교에 다니는 두 남매가 있다.
"태권도를 둘 다 잘해요. 큰 애는 운동을 더 시키고 싶었는데 우리가 아프다 보니 포기하라고 했어요. 한 달에 30만~40만원씩 들어가는 돈이 크더라고요. 그 돈이 없어서 애 운동도 못 시키는 걸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서…."
부부의 방안 벽에는 큰 아이가 대회에서 따온 메달과 상장으로 도배가 돼 있었다. 비교적 선명한 결혼식 사진이 보여 물으니 지난해에야 결혼식을 올렸다고 했다. 역시 돈이 없어서였다.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있었던 청각장애인들의 합동결혼식 때였다. "장애가 있어 아내에게 면사포를 씌워줄 수 있었는지도 몰라 알쏭달쏭하다"는 채씨는 아내에게 병을 옮긴 게 아닌가 싶어 죄스러운 마음이라고 했다. 물론 무혈성괴사증은 전염병이 아니다.
"돈이 없어도 살 수는 있습니다. 대신 아프진 말아야 해요."
채씨의 말에 순간 갑갑한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 방안을 휙 살피니 '가훈'이라고 적힌 붓글씨가 눈에 띄었다. '건강이 으뜸이며, 인간됨이 둘째이고, 그 다음이 지식이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저희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