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준조세

입력 2008-10-25 10:16:33

지난 8월 출범한 구미시 장학재단은 2010년까지 100억 원의 기금을 조성하고 장기적으로 1천억 원을 마련키로 했다. 구미시는 시민 참여운동을 펴 기금을 조성할 계획인데 지역 기업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남유진 시장부터 1천만 원을 기탁하고 분위기 띄우기에 나섰지만 경제난으로 기업들이 목돈을 내놓기가 쉽지 않은 판국이다.

이런 마당에 올 연말 구미시 금고의 계약만료는 호재가 아닐 수 없다. 구미시는 시 금고 유치 경쟁 입찰에 뛰어들고 있는 금융권에 장학기금 출연이라는 덫(?)을 놓았다. 시 금고를 유치하려면 상당액을 내놓아야 할 형편이다. 대구은행, 농협 등 금융기관들은 금고 선정에 칼자루를 쥐고 있는 구미시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터라 서로 얼마를 내놓아야 구미시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 조바심하고 있다.

구미시는 또 구미 5단지 조성사업을 맡고자 하는 공기업 수자원공사에 장학기금으로 수백억 원 정도는 내놓아야 명분이 설 게 아니냐며 은근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 수천억 원의 이익이 보장되는 사업에 참여하려면 그 정도는 기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렇다 보니 구미시에 목을 매고 있는 수자원공사는 구미시가 손을 내밀면 무엇이든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수자원공사는 얼마 전 18개국 주한대사 및 가족 등 37명이 참가하는 구미시의 '주한 외교사절단 초청 투자유치 설명회'의 경비 절반가량을 떠맡기도 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각 지자체마다 실정은 비슷하다. 지자체 금고 계약 시기만 닥치면 단체장을 움직여 금고를 유치하기 위해 지역 금융기관들 간에 필사의 경쟁이 벌어진다.

대학들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대학도 금고 유치와 관련, 금융기관 간의 경쟁을 유도,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의 발전기금을 내놓게 하거나 건물을 건립해 희사하는 일이 관행이 됐다. 명분은 그럴듯하지만 모양새는 좋지 않다. 모두가 상대의 약점을 쥐고 '억지 춘향'격으로 인사를 받는 셈이다. 협찬, 후원금 등등 이름이야 어떻든 간에 모두가 기부금 형태의 準租稅(준조세)다. 기업으로 봐서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돈을 내놓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명목의 돈은 결국 기업에 불필요한 자금부담과 함께 원가상승요인으로 작용한다. 기업은 절대 손해 보는 일은 않는다. 모두가 국민 부담으로 되돌아올 뿐이다.

홍석봉 중부본부장 hsb@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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