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한명으론 부족해!…'아내가 결혼했다'

입력 2008-10-25 06:00:00

"내가 달을 따 달래, 별을 따 달래. 그냥 남편 하나 더 갖겠다는데"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얘기한다. 사람이 생겼단다. 그 사람하고도 결혼하고 싶단다. 그게 뭐 그리 무리한 부탁이냐고 한다. 기가 막힌다.

정윤수 감독의 '아내가 결혼했다'는 일부일처제의 고정관념을 깨는 결혼 판타지다. 여성상위로 역전된 앞서가는(?) 세태극이고, 불륜을 넘어 이부일처제의 '중혼을 허하라'고 달려드는 도발적인 발상의 영화다.

그것은 광란의 2002년 월드컵을 앞둔 시점에서 시작된다.

프로그래머인 인아(손예진)는 나긋나긋한 애교와 귀여움 넘치는 외모로 모든 이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축구광으로 FC바르셀로나의 열렬한 팬이다. 평범한 회사원인 나(김주혁) 역시 그녀를 사랑한다.

그녀를 쟁취하는 것은 결혼 뿐. 그러나 번번이 청혼을 거절한다. 마침내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에 오르던 그날, 관중석에서 그녀는 결혼을 허락한다.

심야의 축구경기와 짜릿한 섹스. 결혼생활은 행복했다. 아내를 구속하지 않는 진실로 쿨한 남편이 되리라. 아내가 회사일로 경주에서 생활하게 된 것도 참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는 폭탄선언을 한다.

"나, 사람 생겼어." "뭐? 누군데?" "자기도 알아. 우리 결혼식에도 왔는데." "같이 잤어?" "응." "그 사람을 사랑해?" "응."

아내는 이혼을 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그 사람과도 결혼하겠다는 것이다. 회유와 협박도 통하지 않는다. 소용없는 일이다. 내가 돌아서 가버리느냐, 아내에게 굴복하느냐. 문제는 그런 아내를 아직 사랑한다는 것이다. 전부를 가질 수 없다면, 반이라도 가져야 하는가.

'글루미 썬데이'(2003년 개봉)가 개봉했을 때 너무나 사랑하기에 그녀의 반쪽이라도 갖겠다는 남자주인공이 회자가 된 적이 있다. 그런데 '아내가 결혼했다'는 한 술 더 뜬다. 정상적인 윤리관을 가진 우리 사회의 통념을 어처구니없이 깬다.

골대였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그녀는 축구 감독이 되어 운동장을 누빈다. 투톱 체제를 두고, 어느 스트라이커라도 골만 넣으라고 주문한다. 둘의 경기기록을 비교하며, 둘의 기량을 독려한다. 간혹 반칙도 벌어지고, 룰이 무색해지기도 한다. 사랑은 축구다? 축구공은 둥글다? 그래서 움직인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제2회 세계문학상 당선작인 박현욱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해박한 축구 상식을 결혼에 빗대어 경쾌하게 풀어낸 소설이다.

영화 또한 경쾌하게 풀어나간다. 현실이라면 비참하고, 고통스럽기 짝이 없을 상황을 코믹함을 곁들여 발랄하게 끌어간다. 원작 소설을 축약하면서 영화적 재해석이 미흡한 것이 아쉽다. '나'라는 일인칭 내레이션으로 극을 끌어가면서 '그 놈'의 비중이 너무 커 관객의 시선이 분산되는 느낌이 든다.

이 영화는 손예진의 매력에만 목을 매는 영화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여자를 일부일처제라는 제도로 낭비할 수 있느냐?'는 듯하다. 그녀의 예쁜 입에서 섹스를 뜻하는 갖가지 상스런 말이 튀어나오고, 전라의 몸까지 노출한다. 특히 김주혁이 환희와 고통, 갈등과 번민의 남편 역을 잘 소화하고 있다. 영화의 수위에 맞춰 연기하기 쉽지 않은 역이었다.

여성을 옥죈다는 여성주의자들의 주장도 있지만, 일부일처제는 인류가 선택했고, 오랫동안 검증된 가장 완벽한 형태의 결혼제도다. 그런 통념을 깨기에 일부 여성관객들은 재미있다고 환호를 보내는 듯하지만, 아내를 둔 이들에겐 불편하기 짝이 없는 영화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다. 사랑이 나눠질 수 있는 것인가? 투톱에게 똑 같은 사랑을 나눠줄 수 있는가? 수비형 미드필더 베컴과 공격형 미드필더 지단이 똑 같은가?

"사랑이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두 배가 된다"는 인아의 대사에 오류가 있다면, 이 경기는 말이 안 된다. 119분. 18세 관람가.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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