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대화] 수필가 박하

입력 2008-10-25 06:00:00

수필가 박하는 어린 시절 심부름 다니기를 좋아해 별명이 '발바리'였다. 돌아다니기 좋아했고 이것저것 살피기 좋아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동시 '달맞이 꽃'을 지었는데 담임 이필득 선생님이 '너는 시인이 될 아이구나'라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 단편소설 '별이 머문 언덕'으로 교내 백일장에 입상했다. 이동희 국어선생님은 '소설가가 되어라'고 했다. 말하자면 박하는 문학소녀였다.

결혼 후 과수 농사를 지었다. 농촌 일이란 게 그렇듯 글을 쓰거나 책 읽을 기회는 적었다. 그렇다고 타고난 끼마저 묻히는 것은 아니었다. 과수원 일을 글로 써서 라디오 방송국에 보냈다. 3년 동안 3군데 라디오 방송에서 38회나 채택됐다. 상품과 상금, 상장 받는 재미가 쏠쏠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쓴 글이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간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박하는 그렇게 살고 싶었다. 낮에 과수 농사짓고 해지면 집으로 들어가 그날 있었던 일을 글로 풀어내며 살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글을 잘 썼던 덕분에 여기저기 등단을 권유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등단이 대수인가요….'

박하는 무덤덤했다. 낮에 농사 짓고 밤에 글을 쓰는 동안 아이는 자랄 것이고, 남편과 자신은 궁금할 게 별로 없는, 욕심도 미련도 많지 않은 노인으로 늙어갈 것이라고 믿었다. 좋은 날들이었다.

1997년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삶의 의욕을 잃은 그녀는 종일 방에 드러누워 지냈다. 그녀를 아끼는 사람들은 말했다.

'떠난 사람은 떠난 사람이다. 이제 일어나야지….'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다.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어두운 방에 갇혀 끝없이 잠들어 있기를 원했다. 잠들어 있던 그녀의 영혼을 흔들어 깨운 것은 수필이었다.

1999년 '수필과 비평'(1, 2월호)에 '어제의 행복'으로 등단했다. 글쓰기로 다시 의욕을 찾은 그녀는 수필공부를 계속했다. 새벽 4시에 무궁화 기차를 타고 경기도 분당까지 오르내렸다. 왕복 9시간을 길 위에서 보냈다. 먼 길을 오가야 했지만 배우는 즐거움에 고단한 줄 몰랐다. 4년 동안 부지런히 강의를 들었다. 그 동안 '현대수필' 2000년 봄호에 수필 '모란꽃'으로 등단했다.

"문학은 제가 숨쉴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글 쓰기는 제게 생명처럼 소중한 일입니다."

박하의 첫 수필집 '파랑새가 있는 동촌 금호강'은 지금은 세상에 없는 남편을 향한 사부곡이자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리움'과 '농촌'은 박하 수필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녀는 1978년부터 1997년까지 경북 의성군 탑리에서 남편과 함께 과일농사를 지었다. 수필 '탑리의 봄', '자두농사', '보리밭', '땅은 정직하다' 등은 모두 그 시절에 관한 작품이다.

최근에 낸 수필집 '초록 웃음'은 행복을 담아 쓴 따뜻한 수필이다. 한 포기 풀, 한 송이 꽃, 한 점 바람에도 애정을 듬뿍 담은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 수필집은 외손자 주환이를 돌보며 쓴 작품이다. 그래서 수필집 '초록웃음'은 아름다움, 꿈, 희망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주환이는 2007년 3월 11일 생입니다. 19개월 조금 지났는데 세상에 어떤 꽃이 이보다 더 예쁠까요. 주환이가 세상에 태어난 날부터 지금까지 오전 7시에 딸 집으로 출근해 밤 10시까지 아이와 함께 지냅니다."

박하의 수필 작품에는 꽃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다. 그녀의 수필 '봄을 불러다 주고 가는 꽃'은 동백꽃을 이렇게 노래한다.

'동백꽃은 새에 의해서 수정되는 조매화다. 벌과 나비가 활동하지 않는 겨울철에 꽃이 피기 때문에 텃새(동박새)가 수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꽃이 질 무렵이면 봄이 성큼 다가온다. 동백꽃은 속절없이 지는 게 아니라 봄을 불러다주고 조용히 사라진다.'

그런가 하면 '분꽃'은 '저녁밥 지을 시간을 알려주는 꽃'이다.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에 하루를 열어가던 꽃. 끝은 마지막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임을 알려주던 꽃. 여름철, 작은 나팔 모양으로 핀 이 꽃을 초롱꽃처럼 꽁지를 빨아먹기도 했다.' -저녁밥 지을 시간을 알려주는 꽃- 중에서.

'찔레꽃'은 보릿고개 넘던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꽃이다. 그런가 하면 '며느리 꽃'은 시어머니 눈치보느라 설움 삼키던 옛 며느리들과 세월이 변해 며느리 눈치를 살펴야 하는 요즘 시어머니의 딱한 처지를 생각나게 한다. 박하는 유독 꽃에 대한 작품이 많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어머니가 늘 꽃밭을 가꾸었어요. 또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는 집에서 과수원을 했는데 사과꽃, 배꽃, 복숭아꽃, 살구꽃, 자두꽃이 지천으로 피었어요. 사과꽃이 필 무렵이면 온 동네가 꽃동네 같았어요. 결혼하고 경북 의성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에도 꽃이 많이 피어있었지요."

그녀의 필명 박하 역시 박하 풀에서 따온 이름이다.

수필이 원래 그런 장르지만, 박하는 자신이 체험한 것만 쓴다고 했다. 그러니 그녀의 글은 생생한 개인사이자 그 또래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박하는 나이 40을 넘겨 등단했다. 이제는 회갑을 지난 나이다. 그러나 글 쓰기에 대한 열정과 사람과 사물을 보는 애정은 갓 등단한 새내기의 열정과 다를 바 없다. 회갑을 넘은 나이임에도 컴퓨터와 인터넷도 잘 쓴다. 인터넷 카페 '대구기독 문학' '산문과 시학'의 카페지기이기도 하다. 대구 침산도서관에서 주부독서클럽도 운영하고, 대구시 교육청이 운영하는 초등산문 영재반 강사이기도 하다.

글 쓰기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박하는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언뜻 사소해 보이는 것에도 애정을 갖고 바라본다고 했다. 애정을 가지고 마주 앉으면 볼품없어 보이는 풀꽃도 진한 사연을 털어놓는다는 말이었다.

수필가 정재호는 "박하는 마라톤선수처럼 달린다. (중략)사람을 평가하려면 관 뚜껑 닫은 후에 하라는 옛말이 있다. 박하의 글에 대한 평가는 먼 후일 평론가들이 평가하리라"고 말했다. 박하의 작품활동이 워낙 열정적이어서 아직은 어떤 평가도 이르다는 말이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박하는…

1947년 대구출생. 본명 박영자. 신명여고. 계명대 보육학과 졸업. 1998년 '오늘의 크리스천 문학' 겨울호 신인상. '수필과 비평' '현대수필' 등단. '지구문학' 소설등단. 수필집으로 '파랑새가 있는 동촌 금호강' '인생' '멘토의 기쁨' '초록웃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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