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항구에 서서

입력 2008-10-23 06:00:00

전시라는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몇 날 며칠 빨간 부표를 확인하는 개인전의 화가들 가운데 나도 한 명이다.

전시회를 준비하다 보면 계절이 언제 바뀌었는지 모를 때가 많다. 바뀌었다기보다 나 모르게 계절이 뭉텅이로 잘려 나간 기분이다. 미술계의 평가는 어떨지, 수고한 보상은 가족의 생계를 이어줄지 이런저런 상념으로 또 노심초사다. 건너뛰는 법 없이 찾아드는 우여곡절로 전시를 마치면 나는 바닷가를 찾곤 한다.

바닷가 방파제에 서서 고기잡이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들의 모습에서 화가의 일상과 닮은 점을 발견한다.

어부들의 꿈이 만선일 것은 틀림없지만 어디까지나 꿈이고 현실은 안정적 어획량과 온순한 기후 그리고 기대에 부응하는 대가일 것이다. 이로써 그들은 가족을 건사하고 세대를 이어가면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 애쓴다. 이는 모든 목숨붙이들의 희망이다.

바닷가에 어구들을 펼쳐놓고 가족은 둘러앉아 이런저런 손질을 한다. 연안 고기잡이배가 있는가 하면

원양어선도 어딘가 있을 것이다. 어장에 따라 그물의 모양새도 다르고 육지로부터 거리도 제각각일 터이다.

이에 따라 동원되는 사람의 숫자는 물론 인적 구성도 다르겠지. 그러나 새로운 항해를 위한 촘촘한 손놀림은 더 많은 고기가 들어차길 바라는 비원이다.

지난번 출항으로 생긴 생채기들을 보살피는 손길 사이로 떠도는 상념들도 엇비슷할 것이다. 어획량이 좋았다면 다시 그곳으로 가 볼 궁리를 할 것이고 나빴다면 예전에 좋았던 곳을 떠올리거나 미답의 장소를 향한 모험을 그리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기후와 때를 살피며 소문을 모으고 경험을 덧대어 꿈을 키우거나.

바다는 삶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현시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출렁이고 변한다. 그곳에 흔들리며 사는 이들에게 희로애락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간다. 생명의 시원이었던 만큼 목숨붙이들에게 젖줄이면서 무덤이기도 하다. 항해는 곧잘 인생에 비유되듯이 화가의 일상이란 것도 출항과 출항을 준비하는 손길 사이를 되풀이한다.

항해는 좌표를 숙지하고 떠나는 모험이며 모험의 성공 확률에 비례하여 전시의 성과도 현실이라는 바다에서 동일하다.

만선의 깃발은 해안의 환호를 약속받는 것이지만 폐선이 되거나 빈 배로 귀항할 수도 있다. 황금어장이 있는가 하면 아직 가보지 못한 어장과 잡아보지 못한 어종을 향한 열정의 항해가 있고 무엇이든 많이만 잡히길 바라는 열망의 출어도 있다. 의지는 의지대로 현실은 현실대로 제각각일 터이지만 바닷가에 다녀오면 화가는 붓을 든다.

김 창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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