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공포증' 기업들 "줄도산 오나"

입력 2008-10-21 09:03:59

통화옵션 상품 '키코' 피해가 지역에서도 현실화 됐다. 대구 성서공단내 매출액 1천억원대의 중견기업인 IDH(구 대현테크)가 키코 손실로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개시 신청을 하자, 지역 기업들도 "우려했던 '흑자도산'이 현실화 됐다. 앞으로 더 많은 기업들이 줄도산 하는 것 아니냐"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IDH의 기업회생절차 개시 신청은 지난 14일 정부가 키코 피해 중소기업들을 구제하기 위해 자금지원 대책을 내놓은 뒤에 벌어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와 은행권의 각종 지원대책이 시장에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왜 이렇게 됐나

IDH는 올해 상반기 매출 579억원에 영업이익 3억6천300만원의 실적을 올렸지만, 키코 손실 여파로 44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이는 자기자본 대비 122.9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설립된 지 29년이 된 IDH는 철강가공설비 업체로, 중소기업청의 기술혁신형 중소기업(2004년), 3천만달러 수출탑(2006년), 대구시 스타기업(2007년)을 받은 유망 중견기업이다. 철강산업 호황에 힘입어 지난해와 올해도 영업실적은 나쁘지 않았다.

지난 8월 공시한 반기 보고서를 보면 이 회사는 지난해 하반기에 SC제일은행, 씨티은행, 외환은행 등과 통화옵션 계약을 맺었다.

SC제일은행과는 매달 총 200만유로, 씨티은행과는 100만유로와 1억엔 규모로, 외환은행과는 50만유로와 180만달러의 통화옵션 계약을 각각 맺었다. 외환은행과 맺은 달러 헤지 계약의 경우, 환율이 938원을 한 번이라도 초과하고 만기 환율이 938원을 넘으면 계약 금액의 두 배를 약정환율인 938원에 매도하게 돼 있다. 이 회사는 키코 계약으로 올해 상반기에만 327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이 때문에 코스닥에 상장된 이 회사는 지난 8월 '자기 자본 10억원 미만, 자본잠식률 50% 이상' 사유로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 최근 추가 손실이 늘어나면서 계약 은행들과 연장 등을 논의했지만 거부당했다.

◆줄 도산하는 것 아닐까

지역 경제계는 "IDH가 최근 포스코재팬과 49억7천531만원 규모의 600t 프레스 앤 브랜킹 라인 공급계약을 체결하는 등 상황이 개선되는 줄 알았는데 결국 회생절차개시 신청을 해 안타깝다"면서도 "그동안 주변에서 흑자도산하는 기업이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 돼 충격적이다"라고 말했다.

성서공단내 입주업체 관계자도 "키코 피해 기업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그 피해가 바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같은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다른 은행과 거래도 끊긴다"며 "키코 거래를 하고 있는 업체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어 가입 사실을 쉬쉬하면서도 특별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다른 업체 자금 담당자는"지난 8월부터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기업들이 정부의 뒤늦은 대책에 현재 1천300원대의 환율에서 여전히 위험한 상태가 계속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연간 매출액 300억원대 한 중소기업체 대표는 "지난해 환율이 920∼950원대에 3개 은행에 키코 상품에 가입했으나 현재 1천200원∼1천300원대로 유지돼 30여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그동안 벌었던 돈으로 근근이 회사를 꾸려 가고 있는데 이같은 고환율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감당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증권선물거래소 대구사무소에 따르면 올 2분기 반기보고서 기준으로 대구경북지역 80여개 상장사 중 24개 기업이 키코 가입으로 3천453억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장되지 않은 기업들을 포함하면 피해 기업과 손실액은 더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실효성이 의문되는 정부지원책

정부는 최근 미국발 금융악재와 환율 급등. 중소기업 유동성 악화에 따른 자금난 해소를 위해 4조3천억원 이상의 정책자금을 추가 지원하고,신용보증기관의 대출도 4조원을 늘린다고 발표했다. 중소기업청과 은행관계자들도 키코 가입 기업에 긴급 유동성 자금 지원(300억원)과 정책자금 만기연장 또는 상환유예(최대 18개월) 조치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업들은 정부의 후속대책들이 신속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피해 규모에 비해 지원액이 턱없이 부족해 기업을 회생시키는 데 도움이 될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특히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은행이 자금지원을 해주지는 않고 업체들의 소송을 막는데만 관심을 갖고 있다는 불평도 많다.

중소기업진흥공단 대구경북지역본부 관계자는 "키코 관련 손실을 입은 기업 관계자들과 상담을 해 보면 금융권의 대출금리 인상과 만기연장의 제한적 허용 등 여신 제한 강화로 기업의 유동성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경북의 섬유수출업체 대표는 "원/달러 환율이 1천400원대에 다가서면서 키코로 인한 피해가 월 4억~5억원으로 늘었다. 지원금 시기나 규모를 알수 없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중기청은 내년 중기 긴급경영자금으로 3천억원을 편성했지만, 환율이 올라 난감한 상황이며 추가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중소기업체들은 "특례자금을 지원받는다 해도 연 8%가 넘는 이자율에 변동금리라 중소기업에는 부담이 된다"며 "은행권의 지원이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정부 정책에 등떠밀린 대책이어서 업체들에게 실질적인 지원 혜택을 돌아갈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진만기자 fact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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