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미국의 국가기관들 중 가장 영향력이 막강한 곳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GAO가 4위로 나타나 화제가 되었다.
국방부, CIA(중앙정보국), FBI(연방수사국), 국세청 등을 제치고 의회, 백악관, 대법원에 이어 4위에 오른 GAO란 어떤 기구인가.
우리의 감사원과 같은 회계검사원(General Accounting Office)으로 모든 국가기관의 회계검사와 직무감찰을 담당한다. 의회직속으로 연중감사를 실시하고 있는 GAO는 단 1달러의 세금(예산)도 적절하게 집행하고 있는지, 권한남용은 없는지를 철저히 감사한다.
감사결과는 수시로 모든 상-하원의원과 행정부에 보낸다. 미국의원들은 우리처럼 매년 국정감사를 하지 않아도 GAO의 감사보고를 통해 각 부처의 운영상황을 손금 보듯 파악, 이를 토대로 의정활동을 펼친다.
완전한 독립, 중립기관으로 원장의 임기는 15년으로 한차례 연임할 수 있다.
1948년 정부수립 때 우리나라는 정부의 회계검사를 맡는 심계원과 공직사회를 감시하는 감찰위원회를 설치했고 감찰위원장에는 국학학자이자 지사인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선생을 임명했다. 건국초 위당은 임영신상공장관의 비리혐의를 들어 파면-구속을 건의했고 이승만대통령이 머뭇거리자 국회에 나가 엄단을 역설해 결국 해임 조치케 했다.
1961년 5.16후 두 기구는 감사원으로 통합돼 회계검사와 직무감찰을 맡게 됐다. 대통령의 직속기구이나 감사원법에 "독립된 감사"를 규정해 어느 정도 기대를 갖게 했다. 하지만 권력형 비리, 공직비리 때마다 실망을 더 많이 안겨줬던 것이다..
그런데 1987년 6.29 선언후 민주화가 시작되면서 감사원장들은 취임사를 통해 놀라운 선언을 했다. "부정부패가 있는 곳에 감사원이 있을 곳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역(聖域)없는 감사를 하겠다." 등등.
얼마나 반가운 소리인가. 그러나 국민들은 지난 20여년 동안 숱한 권력형 비리, 공직비리가 많았는데도 단 한번도 명쾌하게 파헤친 엄정(嚴正)감사를 보지 못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마다 여론이 들끓는데도 권력-청와대의 눈치를 살피느라 감사원은 비리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헤매었고 또 '성역있는' 감사를 거듭했던 게 현실이었던 것이다.
국정감사초기 이봉화복지부차관 케이스를 계기로 촉발된 불법 직불금 수령파문이 전국을 강타했다. 국민들은 분노했고 특히 가뜩이나 어려운 농민들의 가슴을 부글부글 끓게 하고 있다.
직불금은 쌀시장 개방으로 추곡수매제가 폐지된 후 쌀 영농의 손실을 일부나마 보전해주기 위한 보조금이다. 2005년에 1조5천억원, 2006년에 1조6천억원 , 작년에는 108만 명에게 근1조원을 지급했었다. 그런데 실은 순수농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이 돈의 상당액을 비(非)영농인-대리경작자가 꿩 먹고 알 먹는 식으로 수령하고 양도세도 감면받았던 것이다.
문제는 주무부처인 농림부의 직무태만도 그렇지만 이를 감사하고 바로잡아야 할 감사원이 엉성하고 이상한 태도를 취한 것이 의구심을 더 키웠다.
첫째, 작년 여름 대통령에게 감사결과를 사전보고하고 농림부에 시정조치를 취한 후 농림부가 1년 동안 근절대책마련에 미적거린 것을 방치한 것이다. 다음 부당하게 수령한 혐의가 있는 공무원 17만명의 자료를 조사후 폐기한 것이다.
셋째 불법 수령한 공무원들의 주민번호만 조사했지 이름을 모르겠다는 태도다. 그야말로 소도 웃을 코미디 같은 얘기다. 주민번호는 곧 이름 아닌가. 끝으로 감사위원회의는 작년 7월 감사결과를 비공개 하기로 결정했다. 위원회는 지난 2003년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모든 감사내용은 공개한다고 한 원칙을 스스로 파기한 것이다.
60년 경력의 감사원은 아직도 '미성년수준'인가. 이제라도 대오각성하는 뜻에서 국민에게 사과하고 작년의 감사결과는 물론 공직자건 일반인이건 불법수령자들의 명단과 내역을 밝힌 후 자금회수와 응분의 처벌, 그리고 법개정 등을 통한 재발방지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감사원은 어느 시기에 성역 없는 감사자세로 국민을 감동시킬 수 있을 것인가.
아! 우리국민은 언제쯤 미국의 GAO와 같은 감사기구를 만날 수 있을까.
이성춘(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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