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피플]일기 쓰는 남자 김성규씨

입력 2008-10-16 06:00:00

내 손으로 적은'가족 역사책'

'아침 일찍 일어나보니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풀잎이 다 얼고 농사에 피해를 주는 찬서리가 새뽀얗게 내렸다.…'(1977년 5월 16일)

이렇게 시작된 일기는 31년째,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김성규(49'대구 달서구 상인동)씨의 책장에는 31년동안 써온 일기장 60권이 빼곡히 꽂혀 있다.

중학교 졸업 후 집안 형편상 진학을 포기하고 고향인 경북 영양에서 농사를 돕던 김씨는 무료한 밤시간에 이것저것 메모를 하다가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평소 메모하던 습관이 일기로 연결된 것.

"저와 가족의 역사죠. 30년간 5,6번 이사를 했지만 저의 가장 소중한 보물인 일기장은 꼭 챙겼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비슷한 일상이지만 일기 덕분에 그에겐 특별하게 기억된다. 가끔 기억나지 않는 집안 대소사는 일기를 찾아보면 금세 기억할 수 있다. 이젠 일기쓰는 것이 습관이 돼, 집에 손님이라도 와있으면 일기장을 들고 아예 독서실로 간다. 한적한 곳에 주차한 후 차 안에서 쓸 때도 많다. 불가피하게 못쓰게 되면 주제를 메모해놨다가 나중에라도 꼭 쓴다.

"사생활을 적은 일기지만, 비밀은 없어요. 아마 가족들도 가끔 일기장을 들춰볼껄요? 그래서 아내에게 불만이 있을 때 말로 하기보다 일기에 써두기도 하죠."

일기의 주인공은 김씨이지만 일기장을 거쳐간 등장인물은 수천명에 달한다. 영업직의 특성상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김씨는 잠깐 스쳐간 사람들과의 인상적인 대화도 빠뜨리지 않고 일기에 적는다. 부모님의 삶은 물론 가족들의 인생 전편이 일기장에 들어있다. 역사이자, 문학이다.

그렇다 해도 하루도 빠짐없이 30년 이상 일기를 쓰기란 쉽지 않은 일. 이젠 자신만의 노하우도 생겼다.

"쓰다보니 요령이 생겨요. 그날의 주제를 잡아 생각과 느낌을 위주로 단숨에 써내려갑니다. 그러면 5분도 안걸릴껄요? 가끔은 하루 한 페이지가 모자랄 정도로 쓸 내용이 많아요."

일기 뿐 아니다. 메모를 좋아하고 꼼꼼히 정리하는 성격 때문에 달력에 집안 행사를 기록하는 것은 물론 사진첩 정리까지 김씨의 몫이다. 30년 매일신문 애독자인 그는 1986년 아시아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월드컵 등 국내에서 굵직한 행사가 열릴 때 마다 기사를 스크랩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심지어 주요 선거가 열릴 때마다 선거 결과 및 관련기사까지 꼼꼼하게 스크랩해 두었다. 초등학교 시절, '상표모으기' 방학숙제를 하면서 배운 실력이다.

새로운 일기장의 첫 페이지마다 새로운 각오가 담겨있다.

'59번째의 일기장은 다시 나의 책상 앞 책꽂이 속에 오늘도 내일도 그날을 기록하게 될 것이다.'

이 말처럼, 김씨의 일기는 계속될 것이다. "죽는 날까지, 손을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일기를 계속 쓸겁니다. 나의 역사책은 내가 만들어야죠."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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