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대' 자리 바뀐 외국어공부 도우미

입력 2008-10-14 06:00:00

콘사이스는 '책꽂이로' 전자사전은 '손 안에'

▲ 어학 공부를 많이 하는 학생들에겐 전자사전이 훌륭한 공부도우미로 쓰이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 어학 공부를 많이 하는 학생들에겐 전자사전이 훌륭한 공부도우미로 쓰이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8일 오후 대구외국어고의 자습시간. 책 속에 파묻힌 학생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책을 보다 수시로 전자사전의 자판을 치면서 단어의 뜻을 검색한다. 학생들의 책상 위에는 하나같이 전자사전이 놓여있다. 반면 '콘사이스'(휴대용 종이사전)을 넘기는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종이사전 갖고 있는 학생이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배경주(17·대구외국어고 2학년)양은 "요즘 누가 종이사전을 갖고 다녀요"라고 반문한다.

◆전자사전, 학생의 필수품

어학 공부를 많이 하는 대구외국어고 학생들에겐 전자사전이 휴대폰만큼이나 필수품이다. 30명 정도의 학급 학생 가운데 전자사전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는 고작 1, 2명 정도. 대구외국어고 조종기 교사는 "학기 초에 항상 학생들에게 종이사전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당부하지만 잘 안 된다"며 "4, 5년 전부터 학생들이 종이사전보다 전자사전을 많이 이용하더니 지금은 종이사전을 이용하는 학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배양은 "이제 책상 위에 전자사전을 올려놓고 수업을 듣거나 공부하는 것이 교실 풍경이 됐다"고 말했다.

다른 중·고교도 별로 다르지 않다. 능인고 권용원 교사는 "한 반에 절반 정도는 수업시간에 전자사전을 갖고 공부한다"며 "웬만큼 공부에 의욕을 갖고 있는 학생은 대부분 전자사전을 갖고 있다"고 했다. 동원중 박미영 교사는 "요즘은 부모들이 자녀들 입학이나 졸업 선물로 전자사전을 사 주는 것이 보편화돼 있다"고 했다.

최근엔 전자사전을 사용하는 연령층이 중·고교생에서 초등학생으로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요즘엔 일찍부터 영어공부를 시작하는 데다 전자사전이 하나의 유행품이 되면서 초등학생들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 이마트 칠성점 직원 남지혜(25·여)씨는 "매년 입학·졸업시즌이면 전자사전의 매출이 20~30% 늘고 있다"며 "초등학생을 둔 부모가 고객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고 했다.

◆전자사전의 진화

전자사전도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단순한 단어찾기 기능에 그쳤던 전자사전은 이제 음악듣기와 동영상, DMB 기능 등이 추가돼 '만능 엔터테이너'으로 변신하고 있다.

예전 전자사전은 흑백 모니터에 국어와 영어, 한자 등의 단어찾기 기능이 전부였다. 하지만 2, 3년 전부터 나온 전자사전은 이런 기능에다 발음 기능과 MP3나 녹음 기능이 추가됐다. 급기야 최근에 등장한 전자사전은 컬러모니터에 동영상과 사진 저장 기능은 물론, 음악듣기, DMB 기능, 팬 터치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있다. 남씨는 "학생들이 전자사전을 통해 최신 음악을 듣거나 EBS방송을 시청한다"고 했다.

콘텐츠도 꾸준히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단어 찾기하면서 여러 가지 예문이나 숙어를 찾아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기본적인 회화 기능에 원어민의 발음까지 제공된다. 또 단어의 경우, 제품을 만드는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정기적으로 업그레이드 서비스가 된다. 전반적인 가격이 20만~30만원으로 만만찮지만 이 같은 여러 가지 유용한 기능을 갖고 있어 계속 인기를 얻고 있다.

◆전자사전 vs 종이사전

전자사전의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스피드'다. 요즘 학생들은 컴퓨터에 익숙하다 보니 자판을 사용하는 것이 능숙하다. 그렇기 때문에 종이사전으로 단어를 찾는 것보다 최대 1/10 이상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 또 언제 어디서든 휴대가 간편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성환(18·대구외국어고 2학년)군은 "길을 가다가도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책가방에서 꺼내 확인할 수 있다"며 "종이사전이 있지만 집에 그냥 전시용으로 둔다"고 했다. 여기에다 다양한 기능이 포함된 점도 장점으로 통한다. 전자사전 하나로 음악을 듣거나 EBS방송 중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을 다운받았다 시청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아직까지 공부에 있어 종이사전이 더 유용하다는 지적도 많다. 경북대 영어교육과 이예식 교수는 "최근 출판되는 종이사전들은 살아있는 패턴이나 표현이 많이 실려 실생활에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반면 전자사전은 아직 풍부한 예문과 실용적 표현이 부족하다"고 했다. 또 종이사전과 달리 전자사전은 모니터로 보여주는 범위가 한정된다고 했다. 아직까지 종이사전을 사용하고 있다는 김민규(17·대구외국어고 2학년)군은 "종이사전의 경우,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면서 우연히 익히는 단어가 많다"고 종이사전 예찬론을 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 전자사전 5년째 사용 대구외국어고 이선민양

이선민(17·대구외국어고 2학년)양은 5년 동안 전자사전과 '동거동락'하고 있다. 중학교 입학 선물로 받은 전자사전은 이제 그녀에겐 떼려야 뗄 수 없는 '공부 도우미'가 됐다.

이양은 "학교에서 영어와 일어, 중국어 등 3개 외국어를 공부하는 데 그때마다 책상 앞에 올려놓고 활용한다"고 했다. 최근엔 국어공부에도 전자사전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한 단어에 내포된 여러 가지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국어 공부할 때는 보통 사전을 잘 이용하지 않는데 막상 이용해 보니 의외로 유용했죠." 공부할 때 전자사전을 곁에 두는 것이 습관이 됐다.

이양이 전자사전으로 단어를 찾는 속도는 단지 몇 초에 불과하다. 컴퓨터 세대라 자판을 치는 속도가 빨라 종이사전과 비교하면 시간이 1/5로 절약된다. 또 자판을 치면서 자연스레 단어의 스펠링을 외우기가 쉬워졌단다. 이양은 별도로 단어장을 만들고 있지만 중요한 단어는 전자사전에 수시로 저장해놓고 한번씩 확인한다.

전자사전 뿐 아니라 MP3와 PMP 등을 갖고 있으면서 용도에 따라 적절히 활용한다. 전자사전은 단어 찾기만 하고 음악과 EBS강의 시청엔 MP3와 PMP를 이용하고 있는 것. 이양은 "디지털기기가 없으면 학교 생활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전창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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