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전 7시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 사과와 배 등 과일 경매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농민들이 과일 낙찰가를 주시하고 있었지만 표정이 밝지 않았다. 올해 과일 농사는 유례없는 대풍이지만 물량이 늘어나 시세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날 신고 배 15kg 특품의 평균 낙찰가는 1만6천원으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사과 양광 15kg 특품은 3만5천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1만원이 떨어졌다.
이날 사과 100박스를 가져온 농민 차영하(58·청송군 청송읍 월막리) 씨는 경매를 지켜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차씨의 평균 낙찰가격은 1만4천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40%나 가격이 떨어졌다. 농약, 비료값, 인건비는 모두 올랐는데도 사과 가격은 연일 폭락하고 있다. 이날 든 운송비만해도 4만5천원으로 지난해 3만원에 비해 1만5천원이나 올랐다. 이날 차씨가 번 돈은 120만원이다. 하지만 기름값, 도로비, 경매수수료, 인건비, 박스비 등을 제외하면 90만원만 수중에 떨어진다. 차씨는 "후지(부사)가 10월말부터 본격 출하된지만 작년보다 시세가 떨어질 것"이라면서 "사과 가격이 지난해보다 크게 떨어졌는데도 사람들이 과일을 잘 먹지 않아 생산원가도 건지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 한 경매사는 "추석전에는 과일 시세가 비쌀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로는 가격이 쌌다"면서 "출하량이 늘어난데 비해 소비가 전반적으로 줄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올 가을은 지금까지 태풍피해가 없어 유례없는 과일 대풍을 기록하면서 과일 가격이 추석 이후부터 폭락하고 있다. 공급 증가 뿐 아니라 예년보다 빨랐던 추석과 경기침체 등으로 과일에 대한 수요가 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지역 유통업체 판매가격도 추석 전보다 크게 떨어졌다. 지역 백화점 등 유통업계에 따르면 사과와 배는 추석 무렵 이른 추석 탓에 지난해 보다 10% 이상 가격이 올랐지만 추석 특수가 지난 이후 본격적인 사과와 배의 수확이 시작되면서 오히려 가격이 지난해에 비해 20~25%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동아백화점에 따르면 15kg 박스 기준으로 9월 초의 경우 사과는 5만원대, 배는 4만5천원대였지만 현재는 사과 3만원대, 배 2만5천원대에서 가격이 형성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사과 3만5천원, 배 3만원대였다.
가격 하락으로 과수 농가에는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 농민들은 유가와 비료값 등 생산비가 크게 올랐는데도 과일값이 너무 떨어져 생산원가도 건지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생육기 내내 기후조건이 좋았던 덕에 대부분 품목의 작황이 양호해 생산량이 많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사과·배의 경우 추석 때 연간 생산량의 30~50%가 소진돼야 하는데 이른 추석과 과일 소비 부진으로 인해 추석소비가 크게 감소하면서 산지 대기물량이 급증한 것도 원인이다.
포도·복숭아 등 여름 과일의 출하기가 뒤로 밀리면서 물량이 겹친 것도 또 다른 원인이다. 특히 포도의 경우 생산량이 과잉되자 저장에 들어간 물량이 증가하면서 길게는 11월까지 출하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어 물량 과잉 현상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출하 대기량이 많은 만큼 한동안 가격 하락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최근 경기 침체로 과일소비 자체가 주춤한 상황이어서 전망은 더욱 어둡다는 것이 시장 안팎의 예측이다다.
지역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당장의 시세가 좋지 않아도 산지에서 출하를 계속 미룰 경우 그 여파가 내년 설까지 미칠 수 있다"면서 "농가들은 꾸준히 출하를 계속하고 소비자들도 저렴한 가격의 과일을 많이 사줘야 농가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농협 대구지역본부 최문섭 홍보팀장은 "이런 추세로 가면 농민들을 위한 과일 팔아주기 운동을 벌여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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