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나 단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러가지가 있다. 도장(圖章)도 그 가운데 하나. '개인·단체·관직 등의 이름을 나무·뼈·수정 따위에 새겨 인주를 묻힌 후 서류에 찍어 증거로 삼는 물건'이란 사전적 의미를 가진 도장은 그 오랜 역사 만큼이나 켜켜이 쌓인 이야기들이 많은 존재다. '도장을 찍다'란 말이 관용어로 쓰일 정도로 도장은 어느 사람에게나 소중하게 여겨지는 대상이기도 하다.
대구역 건너편 중구 북성로에서 '인문당(印文堂)'을 경영하고 있는 채홍달(64)씨. 반세기 동안이나 도장을 새겨오고 있는, 말 그대로 '도장과 더불어 평생을 보낸' 주인공이다. "1960년 4·19가 난 그 전해부터 도장을 새겼으니 올해로 꼭 50년이 됐네요. 그동안 새긴 도장의 수를 헤아린다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도장을 많이 새겼습니다."
컴퓨터를 동원한 기계로 도장을 새기는 게 다반사인 요즘에도 채씨는 직접 손으로 도장을 새기는 것을 고집하고 있다. 수조각(手彫刻) 도장을 만드는 사람이 대구에 몇 남지 않았다는 게 그의 귀띔. "기계로 새긴 도장은 똑 같은 것을 만들 수도 있지만 사람 손으로 새긴 도장은 똑 같은 것을 다시 만들 수 없어요. 세상에 그 도장은 딱 하나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손으로 새긴 도장은 위조를 못하지요. 여기에다 사람의 체온이 스며 들어가기 때문에 저는 손으로 도장을 새기는 데 자부심을 느끼고 있지요." 수십년 단골 손님들은 물론 일본에서 온 손님까지 있을 정도로 손으로 새긴 채씨의 도장은 그 값어치를 인정받고 있다.
상주 출신인 채씨는 1958년 초교를 졸업한 후 상경, 도장 새기는 곳에 취직했다. "제 세대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경험이 있는 것처럼 어린 시절, 도토리와 측백나무 등에 도장을 새기는 게 저의 취미였지요. 주위 사람들이 제가 판 도장을 보고 '그 놈 손재주가 있구나!'란 칭찬을 해주셨어요." 그 무렵 고향을 찾았다가 채씨가 새긴 도장으로 매끄럽게 일을 처리한 이웃 어른의 주선으로 서울 도장방의 일자리를 얻었다.
"이북 출신의 사장님이 대뜸 저를 보고 글자를 주며 새겨보라 하더군요. 정성을 다해 새겼더니 잘 새겼다고 얘기를 한 후 일자리를 주시더군요." 서울에서 꾸준하게 도장을 새겨오다 79년엔 대구로 와 지금의 자리에 인문당이란 상호로 직접 가게를 열었다. "그 무렵만 해도 대구역 건너편 중앙로에 있는 이 자리가 대구의 최고 번화가였어요.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별로 바뀐 게 없을 정도로 발전이 더딘 곳으로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도장의 재료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많이 바뀌었다. 채씨가 처음 입문했을 때엔 주로 나무로 도장을 새겼고 고급 도장인 경우엔 상아와 물소뿔이 쓰였다. 그 후에 에보나이트와 운모가 등장했고 60년대 초반부터는 안에 조개와 꽃이 들어간 플라스틱 도장이 인기를 끌었으며 요즘에는 이른바 벼락 맞은 대추나무를 뜻하는 벽조목 도장을 많이 찾고 있다는 것.
50년 동안 도장을 새겨온 채씨에겐 특유의 '도장론'이 있다. "잘 그린 그림을 보면 누구나 감동을 받는 것처럼 잘 새겨진 도장을 보면 누가 새겼든간에 기분이 좋지요. 한눈에 잘 새긴 도장과 그렇지 않은 도장을 식별할 수 있지요. 저는 도장이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작품이 잘 나오면 마음이 흐뭇하고 그렇지 못하면 속이 상하지요." 도장을 두고 길흉인(吉凶印)을 거론하는 데 대해서도 그는 소신을 피력했다. "한자로 이름을 써 획수가 24획이 되면 좋은 이름이라고 하지요. 그럴 경우엔 이름만 새겨도 되는데 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획수가 6획인 인(印)자를 덧붙여 30획이 되게 도장을 새기지요. 획수가 30획이면 흉인이라고 하지요." 이름만 새겨도 획수가 좋을 경우엔 그렇게 하고, 이름만 새길 경우 획수가 좋지 않을 때에는 인(印·6획), 신(信·9획), 장(章·11획)자를 덧붙여 길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채씨의 설명이다.
채씨가 새기는 도장은 시간에 따라 값이 천차만별이다. 2,3분만에 새길 수 있는 막도장(나무도장)은 5천원. 상아에 도장을 새길 경우 1시간 이상 걸리며 가격도 50만원선이다. "잘 아는 손님이 중국에서 사온 상아에 도장을 새겨 달라고 찾아왔어요. 찬찬히 살펴보니 가짜 상아이더군요." 손님들에게 도장을 새겨주면서 보람을 느끼는 일도 적지 않다. "어떤 아주머니는 도장을 잘 새겨줘 딸이 서울대에 들어갔다며 저에게 인사를 한 적도 있지요. 또 사업을 하는 분은 제가 새겨준 도장 덕분에 사업이 잘된다며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어요."
50년 도장 인생에 아쉬운 점은 없느냐는 물음에 채씨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도장을 새기는 일을 하면서 2남1녀를 잘 키웠지요. 도장과 인연을 맺은 덕분에 일가를 이룬 셈이지요." 오랜 세월 도장을 새긴 탓에 엄지와 집게손가락에 굳은 살이 박히고, 돋보기를 써야 할 정도로 시력은 나빠졌지만 후회는 없다는 게 채씨의 얘기다. "제가 가진 도장 기술을 전수하려고 해도 요즘에는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요. 은행 일을 보는 데 도장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도장을 사용하는 곳이 점점 없어지는 추세 때문이지요. 세태는 어쩔 수 없겠지만 저의 땀을 쏟은 수조각 도장을 계속 새겨나가는 게 저의 소망입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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