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깊이 전하는 편안함이 있다
◆한국고미술협회 대구경북지회 박상길 회장
"원래 골동(骨董)이란 말은 송나라 때 소동파가 쓴 '구지필기'에 처음 나오는 말로 중국요리에서 뼈를 장시간 고아 만든 국물을 지칭하던 말이 후대 사람들이 집안에 두고 감상할 수 있는 오래된 물건을 일컫는 말로 사용하게 된 겁니다. 따라서 골동품이란 말은 일제의 잔재이며 '고미술품'이란 말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박상길(64) 한국고미술협회 대구경북지회장은 40년 넘게 고가구와 민속품들을 취급해 왔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목고당'은 고가구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2층농, 3층장, 반닫이 가구부터 책상, 먹통, 약탕기에 이르기까지 가게 안은 일천수백점의 고미술품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하게 진열돼 있다.
"여기 있는 대부분의 물건은 옛 사람들이 실제 생활에서 사용했던 것들이죠. 대목장과 소목장들이 썼던 먹통이나 여염집 아낙들이 다림질을 했던 인두와 다리미까지 말입니다. 근대의 우리 조상들은 집안에 필요한 가구나 소도구들 마저도 각각의 용도에 맞춰 달리 썼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박 지회장이 보여준 상이한 형태의 다리미 두개. 하나는 양복을 다릴 때, 다른 하나는 한복을 다릴 때 쓰던 것이다. 요즘 가정에서 쓰는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들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모두 쓰임새에 따라 일일이 장인이 손으로 만든 것들이어서 품격이 다르다. 옛 사람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듯 하다.
생활용품별로 각 지방의 특색도 내포하고 있다. 경상도에선 약을 짤 때 굵은 젓가락 두개를 이용해 약을 짰다면 강원도에선 작은 작두모양의 약 짜는 기구를 사용했다.
"그렇습니다. 민속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조상의 지혜에 또 한번 감탄을 금치 못할 때가 많아집니다. 3층장에 새겨진 나비모양의 경첩은 어떤 땐 살포시 날아오르는 듯 할 때도 있죠." 속은 싸리나무로 짰고 겉은 한지로 마감 처리한 채독(곡물이나 마른 물건을 보관하던 용기)은 가벼우면서도 튼튼했으며 언뜻 약탕기 모양을 한 방짜그릇의 용도는 약을 달이는 용도가 아닌 데우는 용도로 쓰였다. 옛 생활의 면모가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옛 것이 좋은 까닭은 바로 우리네 마음 속 깊이 그것이 주는 평안함 때문이 아닐까요." 문득 가게 한 구석에 놓인 온전한 형태의 9첩 반상 그릇이 낯설지가 않다.
◆중앙갤러리 정대영 대표
"고미술품 중 서화류, 그중에서도 문인화가 주는 감동은 풍류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죠." 30대 초반 때 우연히 문인화에 관심을 갖게 된 이래 수집활동을 해 오다가 20년 전부터는 아예 그 일을 업(業)으로 삼은 중앙갤러리 정대영(63) 대표는 "작가의 인품을 짐작할 수 있다는 점이 문인화가 서양화와 다른 차별성"이라고 말했다.
그가 보여준 죽(竹) 그림 한 폭. 화폭엔 심한 바람이 불고 있다. 그 바람을 거슬러 대나무 잎들이 날카롭게 사방으로 뻗어나 있다.
"이 사군자를 그린 사람은 독립운동가였죠. 그에게 있어 날카로운 대나무 잎들은 일제의 압박에 맞선 칼이자 창에 다름 아닙니다." 그림이되 단순한 그림은 아니라는 역설처럼 들린다.
"특히 문인화는 아는 만큼만 보이죠. 한문으로 된 화제를 모르면 그림의 뜻과 작가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가 없는 거죠." 문인화 수집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50대 이후의 장년층이 주가 되고 젊은 층에게는 외면을 당하는 현실의 이유이기도 하다. 또 문인화는 장식적인 면에서도 요즘의 아파트 문화와 어울리기 어렵다. 단아한 한옥 벽 한 켠을 공허하게 하지 않는 건 아무래도 서양화보다는 문인화가 제격이다.
"문인화는 그것에 대한 포괄적인 지식이 쌓였을 즈음, 어떤 장소이든 작품을 만나게 되고 이 때 그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마치 살아 있는 작가를 만난 듯이 기쁩니다." 정 대표는 그림에 반해 대표적인 대구 문인화 작가인 죽농 서동균 등과 친분을 꾸준히 쌓기도 했다. 최근 문인화는 현대화에 비해 가격 면에서 많이 떨어졌다. 또 소장자들이 고령화가 되면서 시장에 작품들이 잘 나오고 있지도 않다. 따라서 가격은 주로 화상들이 주도하고 있으며 그 외에 작가의 인품이나 그림의 완성도에 따라 값이 매겨진다.
요즘 그에게 바람이 있다면 대구에 문인화 상설 전시관이 개설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매년 2회 고미술품 전시회를 중앙갤러리에서 열고 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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