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자에 담긴 그림이 어울리는 곳은 이미 오래된 공간이다. 그림과 액자는 바늘과 실 같아서 늘 함께할 거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액자의 사용은 그리 길지 않다. 전통적 회화의 경우 한지를 배접해서 편편하게 한 다음 가장자리에 적당한 폭의 비단으로 두른 두루마리나 족자가 있다. 족자는 대개 세로형이 많고 아래 위에 봉을 넣고 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또한 병풍이 있지만 액자와는 다르다. 그러니 액자는 서양미술의 도입과 같이 시작되었다.
개화 이후 한국의 주택이나 업무 공간 등에는 그림이나 사진을 넣은 액자를 곳곳에 걸어 두었다. 벽면에 걸려 있는 작품과 액자의 품격에 따라 오늘날의 자동차처럼 신분이나 지위고하를 가늠할 수 있는 징표로서 과시되기도 했다. 그것은 그 공간의 주인에게 부여되는 문화적 소양이었다. 그렇게 걸려 있는 액자들은 공간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현재를 대변해주는 명료함 때문에 근대화 시대의 필수품이 되었다.
일상에서 그림이 소비되는 공간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미술관 혹은 갤러리라 불리는 전시 공간, 공공건물이나 사무실의 업무 공간, 그림 수요가 가장 많은 주거 공간이 있다. 미술관을 제외한 공간은 현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건축 소재 및 인테리어에 의해 액자가 어울리지 않는 장소가 되었고 예술작품이 필요없는 벽면이 되었다. 미술품이 필요하다 해도 액자는 없어지고 보존을 위한 새로운 소재가 개발되었다. 과거의 액자는 촌스러움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현대적 공간은 그 자체의 완결성 때문에 미술품을 고르는 기준이 분명해졌다. 이는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그림의 도태를 가져왔다. 전통회화인 한국화부터 직격탄을 맞았고 고전 기법으로 그려지던 서양화도 서서히 사라져 갔다. 소위 공간이 그림의 성격을 좌우하는 현상이 시작된 것이다. 사진 작품의 부상이 공간의 변화와 괘를 같이한다.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거나 고가의 그림인 경우 그것이 발산하는 아우라 때문에 공간의 성격을 뛰어넘는다. 넘는 정도가 아니라 압도한다.
미술사나 미술관의 경우 일관된 흐름이라는 맥락에서 미적 행위를 평가하고 역사에 편입시키지만 오늘날 새로 생겨나는 공간은 그 공간의 이미지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작품에 대해 냉담하다. 그래서 자신의 미학적 성찰을 거듭하며 실험 정신으로 인정받는 일은 전시 공간에 한정되고, 미술 시장, 즉 공간으로부터 대접받는 작품의 시대이다. 건축 공간과 기술의 급격한 변화를 감안한다면 현재 소구력 있는 미술품도 사라진 액자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김창태(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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