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기초의원 유급제가 실시됐기 때문에 의원 자체를 직업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포항시의회 관계자는 직업을 가진 시의원들에 대해 겸직(업)을 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한다.
이들의 겸직이 문제가 되고 있다. 겸직을 하거나 영리 목적의 거래가 가능한 직업을 가진 의원이 넘쳐나면서 자신들과 관련된 이해관계에만 몰두, 이권개입 등 각종 부작용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현행 지방자치법 제35조(겸직 등의 금지)는 '지방의회 의원은 해당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단체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거래를 할 수 없으며, 이와 관련된 시설이나 재산의 양수인 또는 관리인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방의원들은 건설업이나 지자체 위탁사업 등을 자신의 명의로 하지 않고 부인이나 친인척 명의로 해 놓고 이권에 개입하는 경우도 허다한 실정이다.
이들의 의정활동 수준이 유치하다는 비난을 듣는 것 또한 대부분 겸직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의원들이 '주민들의 심부름꾼'이기보다는 '정당의 하부조직'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높다.
◆겸직 실태와 부작용
경북 지역 23개 시군의 기초의원 281명 가운데 76.9%인 216명이 겸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업을 하는 의원이 64명으로 22.8%를 차지하는 등 자영업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상당수는 건설업 등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동시의회에서는 18명의 의원 중 3, 4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이권 사업에 관여, 이익을 챙기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생이 농자재판매업을 하는 안동의 모 의원은 지역 농자재 공급의 절반을 독점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있다.
예산편성과 사업정보를 누구보다 먼저 알 수 있는 의원 신분을 이용해 사업부서에 압력을 행사하거나 사업 추진에 참여할 농민단체들을 만나 농자재 공급권을 따내고 있다는 것. 또 건설업을 하는 모 의원의 경우 다른 직업을 가진 의원들과 사업 주고받기를 통해 돈벌이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미시의회에서는 23명의 의원 가운데 17명(74%)이 직업을 갖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본업을 하면서 지역구 내 행사 참석을 주요 일과로 삼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준 높은 의정활동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예천군의회에서는 의원 9명 중 6명이 직업(건설업 대표 2명, 농약판매업 1명, 주유소 1명, 농기구 판매·수리업 각 1명)을 갖고 있다. 포항시의회에서는 일부 시의원들이 자신이 실소유주이면서 당선 후 사업체를 가족 명의로 이전해 놓고 있으며, 기업체에 재직 중 당선돼 휴직계를 내고 활동 중인 시의원도 있다.
영주시의회에서도 일부 의원들이 이권 사업이나 건설업 등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거나 혈연·학연·지연 등을 내세워 공무원 인사에 개입하는 사례가 빈번해 집행부의 불만을 사고 있다.
건설업체 한 관계자는 "봉화 지역에 공사가 수주돼 하도급 계약을 하려 했지만 모 의원이 자신의 친인척이 운영하는 회사에 공사를 주도록 공무원들에게 압력을 행사, 결국 공사를 뺏겼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정당공천제 폐단
14명 중 12명이 한나라당 의원인 영주시의회 경우 무소속의원 왕따시키기, 특정 위원회 배척 등으로 말썽을 빚고 있다. 정당 행사를 위해 의사 일정을 미루는 사례도 빈번하다.
체육대회 등 각종 행사에서 군의원들이 '국회의원 모시기'에 열을 올리는 꼴불견이 연출되고 있다. 어떤 행사는 주민보다 의원 및 정당 관계자가 더 많이 참석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고령·성주·칠곡의 경우 군의원들이 이웃 지자체 행사까지 몰려 다니고 있는 실정이다.
김천에서는 한나라당 공천에 목을 매는 기초의원들과 지역구 국회의원 사이에서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천시의원 17명 중 한나라당 소속인 13명은 지난 6월 서울에서 열린 중앙당 행사에 다녀온 후 "국회의원이 다음 선거 때 공천을 모두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의원은 "의례적인 인사와 격려를 했을 뿐 공천 얘기는 하지 않았다"고 말해 대조를 이뤘다.
◆시민반응과 개선책
영주시 공무원 A씨는 "시의원들의 인사·이권 개입은 해를 거듭할수록 자제되고 있는데, 선거에 도움 받은 지인들에게 신세 갚는 차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안동시 공무원 B씨는 "지자체 사업 전반에 걸쳐 의원들이 개입하고 있다"면서 "이 과정에서 일반 업자들과 마찰이 빚어지는 등 볼썽사나운 일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구미경실련 조근래 사무국장은 "초선의원의 경우 나름대로 열심히 해보려는 의지가 엿보이지만 경험 부족으로 시행착오를 겪는 반면, 재선·3선 등 경험이 축척될수록 초심을 잃어 점점 게을러지는 모습이 역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초의원들의 겸직에 대해 제도적으로 제한하는 조치가 절실하며, 의정 활동을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외부인사로 구성된 의정평가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초의원들에 대한 정당공천권을 없애야 한다는 지적도 높고, 비례대표에 대한 개선책도 요구되고 있다. 의원 수가 10명 미만인 군의회의 경우 비례대표가 1명인데 정당마다 1번을 여성·장애인으로 두도록 하고 있어 숫자상 정치 참여는 늘었으나 대부분 전문성이 거의 없고 비례대표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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