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광장] 생애 최후에 나눌 수 있는 희망!

입력 2008-10-07 08:48:40

얼마 전 세상을 마감한 랜디 포시 교수의 책, '마지막 강의'가 세계적인 화제가 되고 있다. 책의 내용도 좋지만 그 책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극적인 그의 인생이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미국 유수의 명문대인 카네기 멜론대의 석좌교수가 될 만큼 사회적 성취도 빨랐고 가정적으로도 더 할 나위 없이 행복했던 사람이 갑자기 찾아온 말기 췌장암 때문에 불과 46세의 나이에 사망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죽음인가.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도 감동적이다. 19세기 보불전쟁에서 패배, 독일의 지배를 받게 된 프랑스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마지막으로 진행되는 프랑스어 수업시간을 그린 것이 작품의 배경이다.

프랑스어로 배우는 마지막 수업. 그것을 보기 위해, 또 기억하기 위해 학생들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 전체가 모인 교실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하게 수업을 진행하던 아멜 선생은 수업이 종료될 무렵, "나라는 빼앗기더라도 프랑스 말만은 지켜내자"고 말한 후 돌아서서 칠판에다 무엇인가를 크게 쓴다. "프랑스 만세! 알자스 만세!" 그것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마지막 강의나 마지막 수업도 감동적이었지만 의사인 필자에게 가장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서울대 의대 학장을 지냈던 고 이광호 교수의 '마지막 선물' 이야기를 듣던 순간이었다. 평생을 해부학 연구에 몰두하다 갑자기 찾아온 급성 신장암으로 죽음을 맞게 된 이 교수는 세상을 떠나면서 "나의 신체 전부를 의학발전을 위해 써달라"며 자신의 몸을 자신이 일하던 연구실에 선물한 것이다.

1992년 8월 25일 낮 12시 30분, 서울대학병원에서는 여느 때와는 다른 감동의 집도가 진행됐다. 입을 굳게 다물고 눈물을 삼키며 비장한 각오로 집도한 후배와 제자들은 고인의 뜻에 따라 안구를 떼 내어 두 사람에게 이식했고 이미 암세포가 퍼진 간, 폐, 심장 등의 장기들은 병리학 교실의 연구 자료로 사용하기 위해 고이 거두었다.

무엇이든 '마지막'이란 수식어가 붙는 말은 비장하며 그 가운데서도 죽음과 연결된 것은 더욱 비장하다. 그야말로 그것이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마지막을 그냥 마지막으로 끝내지 않고 새로운 삶의 탄생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고 이광호 교수처럼 장기기증, 조직기증 등을 통해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닌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주인공들이다.

이미 심장, 신장, 안구 기증으로 장기 이식은 흔하게 이루어지는 수술이 되어있다. 그러나, 팔이 없는 사람들에게 뇌사자의 팔을 이식해서 새 팔을 갖게 하는 것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신체의 모든 부위가 다 그렇겠지만 사고로, 혹은 선천성 기형으로 팔이 없는 사람의 고통은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그러한 사람에게 새 팔을 선물하는 것은 새 인생을 선물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팔 이식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전제돼야 할 것이 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다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팔을 기증해줘야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누군가가 팔을 기증해도 이식수술을 할 수 있는 의료기술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 문제가 해결됐다. 미국과 독일 등 의료선진국은 물론 중국 등 세계 20여개국에서 이미 팔다리 이식수술에 성공했거니와 한국의 미세수술 술기는 그들보다 나았으면 나았지 결코 못하지 않은 상황이다.

비록 뇌사 상태지만 외부에 보이는 팔이나 안면을 기증한다는 것이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삶의 마지막 순간에,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또 다른 생명에게 새 삶과 새 희망을 선물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거룩한 결단이고 거룩한 죽음일 것이다.

장기기증, 조직기증이 민간차원에서 이뤄져야 할 문제라면 정부차원에서도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다. 팔이나 다리를 이식하는 복합조직 이식수술을 의료보험 대상으로 적용시켜야 한다는 것이며 수술 후 평생 복용해야 하는 면역억제제 처방도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운명적으로 다가온 생의 마지막 순간, 자신의 신체의 일부나 전부를 남은 사람을 위해 기증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기증받아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옮겨줄 수 있는 의사가 있으며, 그 수술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정부가 있다면 평생을 고통 속에서 지내온 사람들은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으며 그것은 환자들만이 아니라 그들과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함께 이뤄야 할 꿈이자 숙제이다.

우상현 수부외과세부전문의/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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