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영화를 보자] 잠수종과 나비

입력 2008-10-04 08:46:06

KBS 1TV 6일 오전 1시

'눈꺼풀을 움직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돈도 있고, 명예도 있다. 사랑과 우정까지, 누구 하나 부러울 것 없는 남자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전신마비 환자가 된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왼쪽 눈 하나뿐이다. 알파벳을 하나씩 읊으면 해당 알파벳에 눈을 깜박여 겨우 소통할 수 있다. 말 한마디 하기 위해서도 수백 번의 눈을 깜박여야 하는 신세다.

그런 그가 소설을 쓴다. 무려 1년 3개월 동안 20만 번 이상 눈을 깜박여 탄생시킨 소설이 '잠수종과 나비'다.

잠수종은 물속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종 모양의 어구다. 엄청난 수압을 견디며, 종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몸이 바로 그의 처지다. 그러나 영혼은 나비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닌다는 것이 '잠수종과 나비'의 대비다.

영화 '잠수종과 나비'는 프랑스 패션잡지 엘르의 편집장인 장 도미니크 보비(마티유 아말릭)의 자전적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져 온몸이 마비되는 '로크드 인 신드롬'(locked in syndrome)에 걸렸다. 로또 1등 당첨 확률보다 더 적은 희귀병이다.

20여일간 의식불명 상태에서 깨어나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왼쪽 눈 하나뿐이라는 사실에 절망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의사소통하는 법을 익히고 소설까지 집필하는 인간승리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화가 출신인 감독 줄리앙 슈나벨은 실제 인물의 자유로운 영혼에 관심을 보여준 인물이다. 27세에 요절한 미국 흑인 화가 장 미셀 바스키아의 삶을 그린 '바스키아'(1996년)와 쿠바의 시인 레이날도 아레나스의 일대기를 그린 '비포 나잇 폴스'(2000년)가 그렇다. 자유를 갈구하지만, 결국 함몰되고 마는 인간을 통해 삶의 의지를 건져 올리는 뛰어난 연출력을 보여주었다.

'잠수종과 나비'에서도 그의 특유의 미적 감각이 엿보인다. 그는 카메라의 눈이 보비의 눈에 갇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영화에서 실험적인 촬영기법으로 그것을 보여준다. 특히 각막 손상을 막기 위해 의사가 오른쪽 눈꺼풀을 꿰매버리는 장면을 동공의 시선이 돼 영상으로 재현해낸다. 서서히 암흑 속으로 갇혀버리는 눈은 마치 잠수종에 갇혀버리는 듯한 답답함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해준다.

심리적 한계와 신체적 고통, 혼란과 비관 등 부정적인 단어로 가득한 현실이지만, 영화는 기가 막히게도 번쩍이는 위트로 그 고통을 중화시켜준다. 보비의 심정을 내레이션으로 전달하는데, 그의 카사노바적인 기질과 유머러스한 성격이 거기에 묻어난다. 예쁜 재활치료사의 외모에 감탄하는 장면 등은 절로 웃음 짓게 만든다. 올해 골든글로브 최우수 감독상,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으며, 2007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으로 전세계 평단과 영화 팬들의 기대와 찬사를 받았다.

무겁고 우울한 절망에서 '그래도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라는 절대 명제를 건져 올린 실화의 힘이 따뜻한 감동으로 밀려오는 작품이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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