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예방 사회적 시스템 필요하다"

입력 2008-10-03 09:45:52

'자살, 개인만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살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신경정신학 용어인 '심리학적 부검'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심리학적 부검이란 자살자의 성장과정, 의학적 병력, 사회적 과거력, 최근 상황 등을 검토해서 정확한 자살 원인을 찾는 작업이다. 이를 통해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의 자살을 막을 방법을 찾을 수도 있고, 유족들의 죄의식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최태진 신경정신과 원장은 "선진국에서는 '심리학적 부검'을 자살 예방을 위한 첫 단계로 삼고 있다"며 "우리사회는 자살을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해 버리지만 그의 개인사를 짚어보면 그 속에서 사회적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자살에 대한 사회적인 예방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전문가의 지적도 많다. 대부분의 자살예방 관련 단체가 민간차원에서 운영되고 있어 예산부족에 허덕이고, 전문가보다는 자원봉사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최 원장은 "119나 112로 '자살하겠다'고 신고를 하는 자살 시도자도 많은데, 이럴 경우 곧장 전문 상담원과 연결시켜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의 속내를 털어내 죽음에 대한 생각을 없애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이 '자살하겠다'며 그 사실을 주위에 공공연히 알려도 별달리 취할 방법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보통 가족이나 친구, 혹은 경찰서나 언론사 등으로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리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적으로 대처할 방법이 없어 안타까운 생명을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지난달 30일 대구 119 상황실로 "앞산 안지랑골 중턱에서 자살하겠다"는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지만 결국 K씨(51)는 다음날 오후 4시에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남부경찰서 관계자는 "신고가 접수된 즉시 강력팀과 경찰 방범순찰대가 모두 동원돼 이틀동안 수색활동을 벌였지만 찾을 수 없었다"고 허탈해했다.

이는 현재 자살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통하는 휴대전화 위치추적의 한계 때문이다. 추적 범위가 도심에서는 반경 500m, 산악지대 등에서는 1km를 넘어서기 때문에 발신번호 추적만으로 사람 하나를 찾아내기란 바닷가에서 모래알 찾기와 마찬가지다.

경찰 관계자는 "자살신고가 들어와도 가슴만 답답할 뿐 어찌할 도리가 없다"며 "신고를 받고도 무시하자니 마음에 걸리고, 대규모 인원이 동원돼 찾아봤자 허탕치기가 일쑤이니 좀 더 정교한 추적 시스템이나 사회적인 예방 장치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 자살로 이어질 수 있는 11가지 징후

① 이유 없이 우울하거나 슬퍼진다.

② 삶의 의욕이 사라져 무엇을 해도 기쁨이나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

③ 최근들어 부쩍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④ 자살에 소용되는 약물에 대한 정보가 궁금해진다.

⑤ 갑자기 명랑해지거나 돌연 우울한 느낌이 드는 등 감정의 기복이 크다.

⑥ 남의 사소한 실수에 버럭 화를 내는 등 감정을 주체못한다.

⑦ 식습관이나 수면, 표정, 행동 등이 이전과는 달라졌다.

⑧ 난폭운전을 하거나 불법약을 복용한다.

⑨ 갑자기 침착해진다.

⑩ 학교생활, 인간관계, 직장생활, 이혼, 재정적 문제 등 삶에서 위기를 느낀다.

⑪ 자살과 관련된 책에 흥미를 느낀다.

출처:미국 응급의학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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