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밖 곳곳 장애물…"냉담한 시선 가장 아쉬움"
오는 10일은 임산부의 날이다. 지난 2005년 11월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2006년부터 기념일로 제정돼 올해로 3회째를 맞았다. 결실의 계절인 10월과 임신 기간을 의미하는 10개월이 합쳐진 의미로 기념일로 채택됐다. 급격히 떨어지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대책 방안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임산부의 날을 맞아 귀한 몸이 된 임산부의 현실을 살펴봤다. 임산부를 배려하는 정책과 제도와 달리 현실은 여전히 냉담했다.
▶임산부, 이럴 때 서럽다.
임신 3개월인 이민정(28·여)씨는 최근 지하철을 타다 황당한 경우를 당했다. 현기증이 나고 속이 매스꺼워 노약자 및 임산부 좌석에 앉았다가 나이 지긋한 한 노인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은 것이다. 70대로 보이는 노인은 이씨에게 "젊디 젊은 것이 버젓이 노약좌석에 앉아 있다"며 지하철 내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이씨는 결국 좌석에서 일어나 곧바로 지하철에서 내려야만 했다. 이씨는 "젊은 사람이 노약자 및 임산부 좌석에 앉아 있을 경우 마땅한 이유가 있을 것이란 생각은 전혀 못한 채 '경로우대'만 주장하는 노인들이 야속하다"고 말했다.
임산부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대다수의 임산부들이 꼽은 가장 필요한 배려엔 '대중교통 이용시 자리 양보'가 최우선으로 나타났다. 특히 겉으로는 표시가 나지 않는 임신 2개월에서 5개월 사이의 임산부들이 대중교통 이용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대구서구보건소 모자보건실 이영순 간호사는 "임신 초기엔 유산의 위험과 입덧, 구토, 극심한 피로감이 몰려와 어려움이 많지만 사회적 인식이 부족해 배려를 받지 못하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임산부들의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6년부터 임산부임을 나타내는 가방 고리를 제작, 보건소와 지자체에 배부하고 있다. 생명을 잉태한 여성을 형상화한 이 고리엔 '예비엄마랍니다'란 문구가 적혀 있어 임산부임을 상징화하고 있다. 하지만 홍보 부족과 시민들의 무관심으로 임산부들에 대한 배려는 여전히 저조한 실정이다.
이 외에도 임산부에 대한 배려로 '직장에서의 심리적 안정'과 '공공장소와 거리에서의 금연', '육아용품 알뜰 장터',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등이 꼽혔다.
▶임산부의 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지난 5월 20일 세계보건기구(WHO)의 '세계보건통계 2008'에 따르면 한국 여성의 평균 출산율은 2006년 통계를 기준으로 할 때 1.2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1990년 1.6명, 2000년 1.4명에 이어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다. 저출산 위기 의식을 느낀 정부와 지자체는 각종 대안과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배우자 출산 휴가 제도'와 '출산 축하금 지급', '임산부의 날 제정' 등 각종 정책과 이벤트성 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임산부의 날'은 산모를 보호하고 배려하는 사회적인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마련됐다. 하지만 현실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지하철역의 많은 계단과 버스 운전사의 난폭운전, 임신 초기 산모의 어려움 인식 부족 등은 임산부 배려란 정책과 괴리를 보이고 있다.
이는 보건소와 구청 등 산모 및 육아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천숙자 대구시 보건복지여성국저출산고령사회과 담당자는 "아직도 우리 사회엔 우리 가족과 친지 내에 임산부가 있을 경우에만 산모에게 관심을 기울일 뿐, 타 임산부에 대한 배려가 약한 편"이라고 전했다. 이는 출산율 저조로 인해 산모가 줄어들면서 내 가족만 챙기는 가족 이기주의와 '임신 혼자 하냐'는 과거 봉건주의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분위기는 대구 보건소 담당자를 통해서도 확인했다. 보건소 한 관계자는"거리에서 임산부 배려를 위한 가방 고리를 전달하고 출산장려 가두 캠페인을 벌여도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냉담하다"며 시민들의 낮은 인지도를 전했다.
김순정 대구서구보건소 보건행정과장은 "임산부를 배려하는 마음은 결국 더불어 사는 세상을 향한 시민들의 의지가 필요하다"며 "학교에서의 인성교육과 중장년층의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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