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오진

입력 2008-09-22 06:00:00

영국의 시인 '프란시스 퀼즈'는 400년 전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엔 의사만한 행운아도 없다. 그의 성공은 소문이 나고, 그의 실패는 흙이 덮어준다." 항생제가 나오기 300년 전의 일이니 당시의 의학 수준으로는 그랬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어림도 없다. 의사의 소득 수준도 과거에 비하면 턱도 없거니와 그나마 의료분쟁이라도 생기면 '쪽박' 차기 십상이다. 물론 실패를 흙이 덮어서도 안 되고, 또 덮어 주지도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의사든 환자든 치료에 있어 가장 싫은 말이 있다면 '오진'일 것이다.

현대 의학이 아무리 첨단장비와 최신기술로 무장했다 하더라도 신의 영역이 아닌 이상 분명히 한계가 있다. 소위 '오진' 이라고 시비가 되는 것들을 들여다보면 '있는 병을 없다고 하는 경우', '없는 병을 있다고 하는 경우', '있는 병을 다른 병이라 하는 경우' 등이 있다. 세 가지 모두 머리털이 쭈뼛 서지만 암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생명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대상을 내가 늘 대하는 암의 경우로 좁혀 보자. 눈에 띄는 종양을 내시경이나 CT 영상에서 무시하거나 놓쳐 암으로 의심조차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는 있겠지만 아주 드물다.

대부분의 암은 일단 의심이 되면 내시경을 이용하든, 바로 침이나 기구로 떼어내든, 혈액이나 골수를 뽑든 하여간에 신체 조직의 일부를 가지고 진단을 한다. 이것을 조직검사라고 하는데 병리과의 의사가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암세포를 찾는다. 그런데 이 부분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아주 쉽게 이해하기 위해 완벽한 정상세포를 흰색이라 하고 확실한 암세포를 빨간색이라고 치자. 그러면 그 중간의 분홍색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꽃분홍색이나 주홍색은? 연분홍이라고 그냥 두고 계속 불안하게 지켜만 볼 것인가? 이래서 병리학자들도 배심원들처럼 모여서 서로 상의하기도 하고, 가끔씩은 그 해석을 놓고 결과가 뒤바뀌는 수도 생긴다.

간이 즉석검사로 알려진 동결절편검사의 결과도 최종 결과에서 바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사실 이런 것들은 현대 진단기술의 한계이지 오진은 분명 아니다. 그런데도 암 보험금 등의 이유까지 더해 의료분쟁이 돼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확실한 진단기법과 예측인자가 곧 나왔으면 하고 생각하다 문득 며칠 전의 대화가 떠올랐다. 자꾸 틀리는 일기예보를 화제삼아 "그것 참,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어서···"라고 했더니 선배 교수님이 웃으며 "확실한 게 왜 없어? '인디언의 기우제'는 확실했는데!"라고 하셨다. 놀라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인디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냈기 때문이란다.

정호영 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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