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의 시사코멘트] 현대 사회의 종교적 대립

입력 2008-09-06 09:27:01

근년에 종교적 대립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후보들의 종교적 지지 기반이 뚜렷이 드러나더니, 요즈음엔 현 정권이 드러내놓고 개신교에 기운다고 불교계가 거세게 항의한다.

종교적 대립은 늘 심각한 문제이므로, 이런 사정은 안타깝다. 우리 사회에선 종교의 자유가 잘 보장돼 있고 여러 종교들이 큰 갈등 없이 공존해온 터라, 더욱 안타깝다.

종교는 타협적이 아니다. 어떤 종교든 이 세상의 원리를 엄격한 교리로 설명하고 모든 일들에 대해서 명확한 지침들을 내놓는다. 그런 엄격성과 명확성이 종교의 본질적 매력이다. 만일 타협한다면, 종교는 자신의 매력을 거의 다 잃을 것이다.

이 점에서 종교와 과학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과학은 늘 회의한다. 흔히 직관에 맞지 않는 가설을 세우고 현실에 비추어 검증한다. 설령 가설이 검증을 통해 증명되어 정설이 되더라도, 더 나은 가설이 나와 정설의 자리를 대신 차지할 가능성을 늘 열어둔다. 게다가 새로운 과학적 지식은 사람들이 몰랐던 일들을 보여준다. 망원경이 발명되자, 이전까지 몰랐던 천체들이 발견되었고, 그 천체들은 이전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물음들을 내놓았다. 즉 과학은 우리의 지식이 명확하지도 완전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늘 일깨워준다.

그런 특질이 바로 과학의 강점이다. 그러나 확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과학은 내놓을 것이 없다. 비록 몇 천년 전의 세계관에 바탕을 둔 원시적 지식 체계지만, 종교는 확신에 찬 교리와 지침을 내놓는다. 바로 거기에 종교의 비교 우위가 있다. 그런 비교 우위에 바탕을 두고, 과학이 발전할수록 종교는 오히려 더 많은 추종자들을 얻어왔다.

당연히, 종교들의 대립은 격렬하다. 종교마다 자신만이 올바른 지식 체계라고 주장하므로,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다.

현대엔 두 가지 요인들이 그런 대립을 더욱 거세게 만들었다. 하나는 민족주의의 융성이다. 정치적으로 대립 관계에 있는 민족들이 서로 다른 종교를 믿으면, 종교적 대립엔 민족주의의 열정이 더해진다.

다른 하나는 마르크스주의의 확산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세속의 일들에 대한 처방으로 이루어졌으므로, 마르크스주의에 물든 종교들은 세속에 참여하는 통로를 얻었다. 게다가 마르크스주의는 원래 종교적 특질을 짙게 띤 이념이어서, 추종자들에게 공격적 포교를 요구한다. 자연히, 다른 종교들과의 공존보다는 포교를 하도록 만들어서, 종교적 대립을 더욱 거세게 만든다.

사정이 그러하니,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믿음을 지닌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고 너그럽게 대하기 어렵다. 그런 성향은 물론 우리 사회의 근본적 원리에 어긋난다.

이런 사정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려면, 먼저 종교가 세속에 너무 깊이 간여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에 나선 사람들이 자신의 종교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도 물론 중요하다. 현 정권이 이런 점에서 신중하지 못했던 것은 자신과 나라에 손해가 되었다.

자신의 종교가 옳다는 믿음이 다른 사람들의 종교가 그르다는 결론으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로마 정치가 퀸터스 시마쿠스의 말대로, "우주의 큰 신비의 핵심엔 한 가지 이상의 접근 방법이 있을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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