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와 함께 떠나는 세계여행]페루 '마추픽추'

입력 2008-07-31 14:21:28

잉카문명의 상징

"멋지구나!, 정말 멋지구나!..."

지금까지 내가 세상 밖 10여개 나라를 둘러본 곳 중 가슴 뜨겁게 감동 받았던 3곳. 인도의 '갠지스 강'과 멕시코의 '피라미드', 이곳 페루의 '마츄픽츄'다.

잃어버린 고대 잉카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마츄픽츄!'. 그 신비한 이름 만큼이나 하늘 아래 태양과 가까운 꿈같은 도시….

미술전공 학도로서 잉카 고대문명의 상징인 '마츄픽츄'는 물론 식민지풍의 유명 박물관들, 그리고 '어린왕자의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으로 널리 알려진 원주민들이 사는 '타킬레 섬'을 둘러보고 싶은 것이 페루 여행의 목적이었다. 페루는 가식없이 순박하고, 수줍음과 따뜻함, 진솔한 정을 듬뿍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평소 꿈에도 그려왔던 쿠바에서의 실망과 허탈함을 뒤로하고, 페루 상륙작전에 성공했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정한 이 나라의 수도 '리마'에 입성하면서 모처럼 평온함을 찾을 수 있었다. 새벽녘 리마의 스모그는 약간의 비와 함께 나를 더욱 싸늘하게 만들었다.

날이 밝으면서 지도 한장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시가지 산책을 나섰을 때 어디선가 쏟아져 나오는 인파들 속에서 가만히 땅을 딛고 서 있었지만 지구가 아주 천천히 꿈틀대는 듯한 생동력을 느낄 수 있었다. 시원한 광장을 둘러싸고 뻗어 나가는 식민지풍의 건축들. 지금이 21세기라는 게 어색할 정도였다. 유명한 '리마 미술관'은 식민지풍의 오래된 건물로 아주 싱그럽고 커다란 공원 안에 있었다. 오후가 되자 새파란 잔디 벤치마다 가족·연인들이 다정하게 주말을 보내기 위해 나들이 행렬에 가세했다.

미술관은 한국의 미술관과는 달리 토기·골동품·보물·회화·사진·조각 등 질리지 않을 만큼 다양하고 거대하고 미로처럼 꾸며져 있었다. 무엇부터 봐야할지 모를 정도로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꿈에도 그리던 마츄픽츄를 만나기 위해서 리마에서 자그만치 3~4일간을 달렸다. 버스로 23시간 쯤 달려 '뜨거운 물(온천)'이란 뜻의 '쿠스코'에 도착, 웅장한 안데스산맥의 그림같은 풍광에 홀린 가운데 고산병까지 앓아야 했다. 국립 인류고고학 역사박물관과 라파엘 라르코에레라 미술관에서는 차빈·나스카·잉카문명 미스테리에 이끌려 머리가 절로 숙여졌다.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만큼 벅찬 감동이 온몸을 감쌌다.

안데스산맥을 넘기 위해 악천후의 위험을 무릅쓰고 미국·중국에서 온 친구들과 멤버를 이뤄 이틀간 '잉카 트레킹투어'를 택했다. 자전거와 베낭을 둘러 메고 하이킹과 등산을 반복, 수 많은 정글의 무시무시한 협곡을 헤쳐나오는 등 짜릿한 쾌감의 연속이었다. 원숭이처럼 밀림 속 바나나·망고·구아바·파파야 등 야생열매를 따먹기도 하고 협곡을 건널 때는 흔들다리와 수동식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등 아슬아슬한 스릴도 만끽했다. 이틀간 사투 끝에 도착한 '산타 테레사' 마을에서의 야외 온천욕은 황홀 그 자체였다.

마지막 코스로 하룻밤동안 '아구아스 칼리엔테스'행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탔다. 이튿날 새벽, 꿈에도 그리던 '마츄픽츄'를 만나기 위해 무거운 베낭을 짊어지고 안데스를 올랐다. 매표소 직원이 티켓(40달러)에 도장을 찍기 위해 여권을 확인하던 중 "솔(SOL)이 진짜 당신 이름인가?"라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페루에서 'SOL'은 '태양'이라는 뜻으로, 화폐 단위도 'SOL'이란다. 직원은 "오늘은 귀한 태양이 뜨겠군!"하며 도장을 쾅 찍어주며 또 웃었다.

태양을 상징하는 이름 탓인지 해맑은 날씨 속에 고대문명의 거대한 실체가 눈 앞에 펼쳐졌다. 넋을 잃었다. 평소 안개에 쌓여 그 베일을 쉽게 허용치 않는다는 데, 나는 축복을 받은 것 같아 뛸 듯이 기뻤다.

계단식 밭에서 마을로 들어가 잉카인들의 뛰어난 건축물인 석축들을 만지며 느꼈다. 종이 하나 들어가지 않는 정교한 석축들, 오랜 세월 동안 자연스레 낀 이끼와 흙돌을 손톱으로 긁어 코에 갖다 대니 수 천년전 그들의 체취와 숨결이 느껴진다.

강열한 돌벽에 손바닥도 갖다 댄다. 왠지 모를 스산함과 따뜻함이 동시에 와 닿는다. 그들의 피와 향기가…. 반대편 '우아이나 픽츄'의 기상과 아찔하게 내려다 보이는 '우루받바 강'을 바라보며 곰곰히 회상한다. 아! 나는 행운아였다.

정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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