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경주 & 인근 해수욕장

입력 2008-07-31 14:27:38

흐르는 세월에도 변함없이 빛나는 겨레의 보석

초등학교가 방학에 든 지 보름이 넘어가고 있다. 방학 전에 짜 둔 생활계획표는 구석에서 홀로 잠만 자고 있고, 몸과 마음은 슬슬 뒤틀릴 때이다. 그렇다고 마냥 물놀이와 TV만 보며 무작정 여름방학을 보낼 수는 없는 실정.

경주로 눈을 돌려보자.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엔 초등학교 4,5학년 사회과목에 나오는 유적지가 즐비하다. 특히 2,3학년 자녀를 둔 경우라면 여름방학 숙제인 현장체험학습을 함께 떠나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석굴사원의 한국적 수용과 독창적 구조를 자랑하는 석굴암, 고대 국가의 발전 및 신라 묘제 금관의 원류를 보여주는 대릉원의 천마총, 삼국통일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안압지, 유체역학의 원리를 이해한 신라인들의 과학적 지식이 응축된 포석정 등 단순히 과거의 유적지이기에 앞서 그 속에 응축된 지혜와 신라인들의 삶을 타임머신을 탄 듯 둘러볼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곳이다.

▩천년을 거스르는 과거로의 여행

경부고속도로 경주IC에서 경주시내 방향으로 5분쯤 가다 오른쪽 소방도로로 접어들면 만나게 되는 포석정은 신라 왕실의 별궁이었으나 지금은 수구길이 6m의 석조구조물만 남아 있다. 49대 헌강왕이 여흥을 즐길 때 남산의 신이 내려와 춤을 추자 왕도 따라 춤을 추면서 어무산신무(御舞山神舞)라는 신라춤이 유래된 곳. 경애왕 4년(927)에는 후백제의 견훤이 습격, 신라왕조가 무너지게 되는 결정적인 단초가 된 곳으로 유상곡수(流觴曲水?굽이져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어 보냄)의 연회가 열렸던 장소이다.

연꽃이 제철을 맞아 홍련·백련이 흐드러진 사이 길을 지나 다다른 대릉원은 20여기의 왕릉이 한데 모여 있는 곳으로 신라의 대표적 돌무지덧널무덤(5,6세기 적석목곽분)인 천마총과 최초의 김씨 성을 가진 왕인 미추왕릉이 있다.

토총두께 5m, 점토층 두께 0.2~0.3m의 천마총 내부는 돌무지덧널모형과 청동제기, 금관, 새 날개모양 관장식, 귀걸이 등 전시돼 있고 자작나무 껍질에 하늘을 나는 말 그림이 나와 무덤의 이름을 천마총이라고 한다. 발굴당시 1만1천500여점의 유물이 나온 곳으로도 유명하다.

넓은 대릉원 안 푸른 노송 사이로 연붉은 봉우리를 피운 배롱나무 꽃이 녹색의 캔버스 위를 붉은 점을 찍어 놓은 듯한 내부 전경도 무척 아름답다. 대릉원과 인접해 있는 첨성대는 직선과 곡선이 어우러진 걸작의 건축물로 정겹게 다가온다. 유적지와 유적지 사이사이 활짝 꽃망울을 터뜨린 홍련과 백련이 가장 기품 있게 보이는 것도 이 즈음이다. 멀리 벌초를 위해 왕릉을 오르는 일꾼들의 모습이 한여름 줄을 지어 먹이를 나르는 개미의 행렬처럼 보인다.

주황색 코스모스 군락지와 연꽃의 향연을 뒤로하고 찾은 곳은 통일신라 별궁이었던 안압지다. 안압지는 통일신라 왕궁의 별궁에 자리한 연못으로 원래 이름은 월지(月池)로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전성시대를 구가하기 시작한 문무왕14년에 조성됐다.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시대를 누리게 된 신라는 못을 파고 인공 산을 만들고 화초와 각종 동물과 귀한 새들을 모아 길렀던 곳. 초입에 궁궐과 안압비의 출입통로인 월정교를 미니어처로 복원한 모형만 봐도 그 화려함을 엿볼 수 있다.

건국 60주년을 맞아 연말까지 무료입장인 국립경주박물관은 세계 최고의 음향을 지닌 성덕대왕신종의 과학적 해설과 불교미술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불상 등 신라 문화유산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곳. 상설 전시관으로 고고관, 미술관, 안압지관과 특별 전시관으로 구성돼 있으며 정원에는 다양한 석탑과 불상이 관람객을 맞는다. 입구에서 3천원을 내면 전시유물에 대한 음성안내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 관람시간은 1시간30분에서 2시간 정도다.

자연바람에 의한 과학적인 습도조절기능이 있는 토함산 석굴암은 주불의 섬세하고도 정교한 조각솜씨와 햇볕에 의한 장엄함이 깃든 신라불교미술의 백미. 인도·중국의 석굴과는 달리 화강암을 인공으로 다듬어 조립한 석굴암은 불교세계의 이상과 과학기술, 세련된 조각솜씨가 어우러진 걸작임에 틀림없다. 석굴암 주차장에서 내려다 본 경주 남산과 시내 전경 또한 천년고도의 시청각교육장으로서 모자람이 없다.

이어진 불국사 탐방은 풍부한 상상력과 예술적인 기량이 어우러진 신라불교미술과 건축미의 정수이다. 동서 90m의 석축위에 청운교와 백운교가 그 멋스런 자태를 뽐내는가 하면 그 위로 자하문과 대웅전·무설전이 남북으로 이어져 있다. 대웅전 앞 다보탑과 석가탑 주변으로는 많은 외국인들이 찾아와 감탄을 자아낸다. 특히 대웅전 뒤 무설전(無說殿)은 참다운 진리는 언어도단의 경지임을 말해주 듯 말없이 천년의 세월을 오롯이 한 자리를 지켜온 것 같다. 극락전 현판 뒤에 숨어 있는 복돼지 조각은 불국사만이 갖고 있는 사찰 속 숨은 그림 찾기라 해도 좋다.

남산을 베개 삼아 뉘엿뉘엿 해가 기울 즈음, 역광을 받아 검은 실루엣으로 각막에 맺히는 석가탑의 긴 그림자를 따라 천년고도 경주의 빛나는 보석들이 하나 둘 몸을 숨기며 내일의 찬란한 태양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31번 해안국도를 따라 펼쳐진 동해안 해수욕장

경주 양북면 봉길리에 자리한 봉길해수욕장은 문무대왕 수중릉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유래가 드문 수중릉을 건설한 신라인들의 기술과 호국의지가 깃든 이 해안선을 따라 제트스키와 제트보트가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한여름 더위를 식혀주고 있다. 송림을 배경으로 모래와 자갈이 섞인 해안선과 푸른 바다의 수평선, 시원한 해풍을 맞으며 줄지어 선 그늘 막에선 이른 휴가를 즐기는 피서객들의 물놀이가 한창이다.

내친 김에 더 내려가 본 31번국도는 군데군데 4차선의 산업도로가 건설되고 있다. 그래도 2차선의 옛 도로를 달리노라면 푸르고 차가운 감청색의 동해바다가 더위를 잊게 한다.

해안이 길게 펼쳐진 정자해수욕장과 울산 동구 주전동에 자리한 주전해수욕장은 보석처럼 아름다운 오석(烏石)위로 하얀 물보라가 절경이다. 이들 해수욕장들은 해안선이 길고 몽돌과 모래가 섞인 해안으로 돼 있는 것이 특징이나 바다로 몇 발자국 들어가지 않아 수심이 깊어지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달빛신라역사기행

낮시간 동안 신라천년의 정취를 체험했다면'달빛신라역사기행'으로 신라의 신비로운 밤을 경험해 보자. (사)신라문화원이 주최하는 달빛신라역사기행은 오후 3시부터 9시까지 진행되며, 낮 시간엔 전문 해설사와 함께 유적답사를 하고 어둑해지면 저녁을 먹은 후 소원을 적은 백등에 불을 밝혀 탑돌이를 하게 된다. 이어 유적지 현장으로 자리를 옮겨 전통 국악공연도 즐기고 감자 구워먹기와 같은 색다른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도 있다. 달빛기행이 없는 주는 별빛기행이 펼쳐진다.

▷문의:신라문화원 054)774-1950, www.silla.or.kr. 일반 1만8천원, 청소년 1만6천원. 행사 2일 전 신청접수.

▷하반기 달빛기행 8월9일, 9월6일, 10월11일 ▷별빛기행 8월23일, 9월27일, 10월25일.

●경주유적기행 팁

유적지 주변으로 활짝 핀 홍련과 백련을 보기 위해서는 경주 유적지 관람은 오전 일찍 시작하는 것이 좋다. 정오를 넘어서면 강한 햇볕 탓에 쉽게 지치기 때문에 제대로 관람을 할 수 없다. 또 유적지마다 주차장에선 소형자동차 기준으로 2천원의 주차료를 지불해야 하며 관람료도 유적지 규모에 따라 어른 500원~4천원, 중고생 300원~3천원, 초등생 200원~2천원을 내야함으로 4인가족 기준으로 그 액수가 만만찮다.

●먹을거리

울산 강동면 정자항 포구에는 34곳의 활어가게가 한 데 모여 있는 정자활어회센터가 있다. 울산수협정자어촌계가 직영하는 이곳은 농어·이시가리 등 고급어종을 비롯해 쥐치·광어·도다리·아나고·소라·해삼 등 동해안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활어들이 좌판에서 퍼덕인다. 그 모습만 봐도 절로 생동감이 솟는다. 내륙에선 좀체 구경하기 어려운 노래미·성대·뽈락 등 자연산 잡어도 지천이다.

이곳에서 횟감을 골라 회를 뜬 후 회센터 뒤편으로 있는 초장집에서 먹게 되는데 1인당 4천원을 내면 각종 채소와 초장 등 밑반찬을 제공한다. 회를 먹은 후엔 5천원을 내면 매운탕을 끓여준다. 정자항의 풍경을 내다보며 갓 잡은 생선회를 먹는 맛이 색다른 느낌을 준다. 잡어 포함 1인당 1만원꼴이면 양을 넉넉하게 먹을 수 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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