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채권 받아든 중국 농민·톨게이트 근무 한국 아줌마
지금 버스의 창밖으로 공장의 매연과 위하의 악취로 흐려진 서안(西安)의 풍경들이 지나간다. 시황제의 병마용갱과 양귀비의 로맨스로 유명한 이 고도(古都)를 지나자 자연스레 한 벽안의 기자의 용감한 여정이 떠오른다. 1936년 에드거 스노우가 목숨을 걸고 이 서안을 지나 마오쩌둥을 인터뷰했을 때, 중국의 농민들은 각박했을지언정 부푼 희망과 붉은 열정에 들떠 있었다.
서안부(西安府)에서 북쪽으로 가는 이 길의 곳곳은 중국인 여행자들에게는 그들 민족이 펼쳐낸 풍부하고 다채로운 드라마의 추억들을 새롭게 되살려 주는 곳이다. 중국에서 가장 최근에 일어난 역사적 변천인 공산주의운동이 하나의 운명을 개척해 나갈 장소로서 이곳을 선택한 것은 부적당해 보이지 않았다. 『중국의 붉은 별』 에드거 스노우 지음/신홍범 옮김/두레/7천원
올림픽 간판이 휘황찬란한 서안의 종고루. 이제 마오의 꿈은 추억이 되어 기념품 가게에 비치되어 있다. 홍군(紅軍)의 모자를 집어 드니, 중국인 아줌마가 대담하게도 30위안을 부른다. 나는 흥정도 하지 않고 5달러짜리 US달러를 내밀었다. 이제 중국인들은 붉은 별 보다는 링컨이 도안된 종잇조각을 더 사랑하게 된 모양이다. 서안을 지나쳤던 또 다른 한 사람의 서방 기자 랍 기포드는 이러한 아이러니한 중국의 현실을 『차이나 로드』라는 책으로 엮었다.
가난하고 참을성 많은 중국 농민들, 참 딱하다. 공산주의 혁명은 그들을 위한 혁명이어야 했다. 농민들은 중국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면서도 그 누구보다 오래, 그리고 깊이 고통받아왔다. 사회 평등이라는 공산주의 위대한 실험은 사실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제일 뒷전으로 밀려나버렸다. 『차이나 로드』 랍 기포드 지음/신금옥 옮김/에버리치 홀딩스/1만6천원
서안 역전의 선술집에서 조선족 김씨와 짜릿한 태백주를 기울였다. 여느 중국인처럼 자부심이 강했던 그는 한사코 내가 들이미는 만원권을 뿌리치더니 인민폐로 시원하게 계산을 마친다. 이제 한국에 놀러 와서 돈 좀 써주세요. 이렇게 농을 걸자 그는 소년처럼 씩 웃다가는 이내 침울해져서 이렇게 말한다. 중국도 큰일인 곳입니다. 발전은 하는데 빈부의 사이는 좀좀더 코지지 않습니까. 농촌 친구들은 제 버는 돈에 십분의 일도 못 버는 거 아입니까.
인천 공항에 돌아오자 넓고 시원한 리무진이 기다린다. 잠시 후 리무진은 북대구 톨게이트를 시속 60km의 속도로 '하이패스'했다. 중국은 또, 한국은 이제 어디로 가고 있나. 부도 채권을 받아든 중국의 농민들과 한국의 톨게이트 아줌마들은 이제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까.
박지형(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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