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소통부재 자성…커뮤니케이션 관심 급증
#사례1="머리가 자주 아픈데, 왜 그런가요?" 김문희(45·대구시 달서구 신당동)씨는 몇 년 전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서 종합병원 신경과를 찾았다. 의사는 3, 4분 정도 환자와 이야기를 나눈 뒤 몇 가지 검사가 필요하며, CT도 한번 찍어보자고 했다. 김씨는 며칠 뒤 검사를 받고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 잔뜩 긴장한 마음으로 다시 그 의사에게 갔다. "아무 이상이 없네요." "그런데 왜 머리가 아픈 거죠?" "뭐 그럴 수도 있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있고." 김씨는 30여만원이나 들여서 검사를 받았는데, 의사는 정상이라며 '꾀병 환자' 취급을 해서 불쾌했다고 말했다.
#사례2=당뇨병으로 한 달에 한번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박성철(55)씨는 병원에 다녀올 때마다 짜증스럽다고 한다. 박씨는 "예약을 했는데도 1시간 가까이 기다렸다가 막상 진료를 받는 데는 3분도 걸리지 않는다"며 "의사는 환자의 얼굴 한번 보지 않고 컴퓨터 자판만 두드리면서 매번 같은 질문에 같은 약을 처방한다"고 말했다.
#사례3=입원한 환자도 의사와 얘기하기가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대학병원에 입원한 오모(49)씨는 "회진을 할 때는 교수가 여러 의사를 거느리고 병실에 왔다가 환자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자기들끼리 얘기하고 나가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며 "담당 교수는 물론이고 주치의라도 만나려면 간호사에게 몇 번이나 부탁을 해야 한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대화 없는 의사-환자 분쟁의 원인
대학병원 한 교수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로는 의료수가가 낮아 1시간에 10~20명 이상 진료를 해야 병원 경영이 가능하다"며 "짧은 진료시간으로 인해 환자와 충분한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고 했다.
하지만 의사와 환자의 '소통' 부재는 환자들에게 불만을 사게 하는 것은 물론 의료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마케팅 연구 자료에 따르면 '불만 환자'는 9~90번(연구자에 따라 결과가 다름)이나 의사나 병원에 대해 악평을 한다. 이런 악평이 병원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금전적으로 환산하면 2억3천만원에 이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소비자보호원의 의료서비스 피해 구제 접수 건수(2005년) 1천93건 중 환자가 의료인에게 물었던 주된 책임이 '설명 소홀'인 경우가 18.7%나 됐다.
병원과 의사들 사이에서 '환자와 소통'이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국내 의료제도나 건강보험제도 등 의료 환경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소통의 부재로 인한 의사-환자의 불신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자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의료분쟁의 증가, 언론과 인터넷 등 다양한 의료정보의 개방, 국민들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기대 및 욕구 상승 등이 의사와 환자 간 대화의 중요성을 높이고 있다.
◆이젠 '소통'할 때
서점에는 '의료커뮤니케이션'이나 '설명 잘 하는 의사' 등에 대한 환자와 소통 문제를 다루는 번역서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의사, 간호사, 인문학자들로 구성된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도 결성됐다. 의과대학들도 의료커뮤니케이션 과목을 신설 중이다. 2010년부터는 의사 선발 국가고시에 '의료 면담' 실습 과목이 추가될 예정이다. 현재 가톨릭대 의대, 고려대 의대, 경희대 치과대학, 연세대 의대 등 5, 6개 대학이 관련 과목을 개설한 상태이다.
우리나라 의료 현실에서는 환자 1명을 3분 이상 진료하는 것이 쉽지 않다. 짧은 3분, 하지만 이 3분을 알차게 활용하는 의사들도 많다. 대구 북구 C병원 원장(정형외과 전문의)은 관절염이나 척추 디스크 환자가 오면 그림을 그려가면서 환자의 상태를 설명해 준다. 당장 수술이나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태가 아닌 환자에게는 운동이나 생활요법을 가르쳐 주느라 시간을 많이 끄는 편이다. 어떤 안과 의사는 진료 시간을 아껴 쓰기 위해 미리 만든 근시 진행 억제를 위한 '생활지침'을 환자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왜 소통이 필요한가?
치료는 의사와 환자의 신뢰에서 시작된다. 의사는 환자와 '라포'(rapport·마음이 서로 통함)가 잘 형성돼야 제대로 진료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라포 형성의 전제 조건이 '소통'이다. 의사소통은 환자 치료 결과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의사와 환자가 소통이 잘 될수록 진단의 정확성이 높아지고 의료 소송은 줄어든다. 그리고 소통이 원활하면 환자가 치료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치료율이 높아진다는 사실도 여러 연구에서 검증된 사실이다. 특히 당뇨병, 고혈압 등 성인병이나 만성질환자들에게 소통은 아주 중요하다. 이런 병들은 지속적인 치료와 생활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상당수 환자들은 별다른 증상이 없다는 이유로 의사와 상의 없이 치료를 중단하거나 약을 복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 잘 낫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러 병·의원을 전전하기도 한다. 의사는 식습관, 음주, 흡연, 운동 여부 등 환자의 사소한 생활습관을 묻고 문제가 있는 경우 이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환자를 설득해야 이런 병들을 잘 관리할 수 있다.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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