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에는 모니터가 7개나 됐다. 벽에 걸린 TV는 BBC뉴스가 실시간으로 쏟아내는 세계 경제 소식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전화기는 연방 울어댔고 실시간으로 나오는 외환 가격 정보를 알려주는 기계인 '전화 박스'도 연거푸 음성 정보를 쏟아냈다.
지난 15일 기자가 찾아간 서울 중구 소공동 대구은행 외환 딜링룸은 총성만 나지 않을 뿐 '전쟁터'였다. 미래의 환율을 예측, 외환 거래를 통해 이익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그들은 마법사였다.
◆승률 8할에 도전한다
올 1월 국민은행에서 대구은행으로 건너온 김태완 차장. 그는 목표가 8할 승률이라고 했다. 1년 열두달 가운데 9, 10개월 정도만 수익을 내면 대성공이라는 것이다. 짧으면 2개월, 길게는 몇개월동안 돈을 '날릴수도' 있을 만큼 외환시장 알아맞추기는 '지극히' 어렵다고 김 차장은 말했다.
그런데 그는 요즘은 스트레스의 강도가 더 심하다고 했다. 원/달러 환율을 예로 들면 여러가지 여건상 환율이 올라갈 수 밖에 없는데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이 이뤄지면서 환율 하락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정말 예측이 어려운 시장이 시작됐다고 그는 말했다.
지난 9일 외환당국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엄청난 양의 달러 매물을 쏟아냈을 때 이 곳 사람들은 가슴이 철렁했다. 예측치를 완전히 뒤집어버린 원/달러 환율이 나타난 것.
하루 5억달러 이상의 외환을 사고 팔면서 이익을 만들어내는 이 곳. 조금만 예측치가 틀려도 엄청난 손실을 본다.
이 곳 이성우 부부장은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해 점심을 20분만에 먹고 뛰어들어왔는데 '폭탄'이 터지고 있었다. 겨우 '본전' 정도로 막았다. 손해를 보지 않은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라고 했다. 17년동안 외환 딜링룸을 지켜온 이 부부장은 시장을 보면 어느 정도 '느낌'이 온다고 말했다. 지난 9일도 '이상한 느낌'이 들더라는 것이다.
◆그들의 일상
딜러들은 보통 아침 7시가 넘으면 출근한다. 외환시장이 열리기 전 '오늘의 시장'을 분석해낼 정보부터 탐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가장 먼저 찾는 것이 국제유가 정보다. 국제 유가 폭등세로 환율도 유가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이다.
김태완 차장은 "유가, 국제 금 가격, 유로화 등을 주로 보면서 환율 동향을 예측한다"며 "외환시장은 사실상 24시간 움직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외환시장 마감은 오후 3시. 하지만 딜러들은 6시를 넘어서 퇴근한다. 4시 무렵 열리는 런던 시장을 한번 들여다봐야 한다.
하지만 퇴근을 한다고 해서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어야 한다. '다독(多讀)'이 유능한 딜러를 만든다는 것이다.
휴가는 자주 갈 수 없다. 1년에 한번쯤. 휴가를 갈 때는 완전히 거래를 멈춘다. 한번쯤은 푹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돈의 위력
대구은행은 뉴욕사무소 등 외국 근무 경력이 많은 이화언 행장이 취임한 이후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외환' 부문 강화에 나섰다. 올해 상반기에만 외환딜링룸에서 48억원의 이익을 냈다. 일반 영업 지점 1곳당 평균 이익이 10억원 정도인데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외환거래를 통해 영업 지점 이익의 5배 가까이를 올려내고 있는 것이다.
거래를 통해 손해를 볼 위험성이 크기도 하지만 딜러 1명이 하루에 2억~3억원을 버는 날도 있다. 대단한 부가가치다.
큰 이익을 만들어내는 만큼 급여도 일반 은행원보다는 많다. 국민은행에서 스카웃해온 김태완 차장은 올 상반기에만 벌써 10억원의 수익을 내줬다. 그에게는 수익을 낸만큼 기본급 외에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시중은행의 외환딜러들은 지방은행인 대구은행보다 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받는다. 수입이 많아 '벤츠'를 타는 외환딜러도 여럿이다.
◆외환을 모르면 낙오자가 된다
이 곳 막내인 이응주 대리는 '외환 상담사'다. 쉴새없이 들어오는 '질문'에 답해줘야 한다. 하루 종일 그는 100통 이상의 전화 응대를 한다. 요즘은 문의전화가 더 많다. 컨텍센터의 상담원들처럼 이어폰을 껴야 한다. 각 영업점에서 외환 관련 질문을 해오면 답해준다. 환율 변동 추이에 대한 전망 메시지도 영업점으로 쉴새없이 날린다.
이 대리는 "외환당국이 개입을 하지만 여전히 기업들은 달러값이 더 오를 것으로 보는 쪽이 많다. '달러를 사달라'는 기업들이 훨씬 더 많다. 지금으로 봐서는 환율 하락요인이 별로 없다"며 외환당국 개입에도 불구, 환율 상승 압력이 더 강하다고 했다.
이성우 부부장은 "이제 개인들도 외환과 정말 가까운 시대가 됐다. 해외여행, 유학 등이 일반화한 때문이다. 이웃나라 일본만해도 개인들이 PC에서 주식을 거래하듯 외환거래를 굉장히 활발히 한다. 우리도 머지않아 그런 날이 올 것입니다. 이제 외환을 모르고는 경제를 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태완 차장은 "개인들은 외화예금을 통해 환테크를 해야 한다. 기업들도 선물환을 통해 환위험을 회피해야 한다. 기업들은 이제 자산관리에서도 외환 부분을 감안해야 한다. 외화자산을 많이 확보하고 환율 변동 예측치에 따라 외화부채도 조정하는 등 외환에 대한 확고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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