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맹부·맹모 다이어리] "장애 극복위해 그림자 뒷바라지"

입력 2008-07-22 06:57:31

난청 아들 한국 사격계 대표 만든 박점희씨

▲ 박점희씨는 청각 장애를 단순한 불편함으로 만든 아들 김태영군이 무척 대견스럽다.
▲ 박점희씨는 청각 장애를 단순한 불편함으로 만든 아들 김태영군이 무척 대견스럽다.

영진고 3학년 김태영(18)군은 한국 사격계의 떠오르는 별이다. 몇년 전부터 전국 사격대회에서 상을 휩쓸어 청소년 대표로 뽑혔는가 하면 지난달엔 대한민국 국민체육훈장 기린상도 수상했다. 더욱이 선천성 청각장애란 '불편'을 딛고 일어난 성과여서 더 빛나고 있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 박점희(44·대구 동구 지묘동)씨는 뿌듯해 하면서도 눈가에 물이 맺힌다. "태영이가 무척 대견스럽죠. 과거 주위 엄마들이 태영이를 보면서 '보청기만 끼고 정상적으로 잘 클 수 있을까'라며 걱정 어린 눈초리로 바라본 때도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정말 가슴이 아팠어요. 하지만 지금은 안 들리는 것이 단순한 불편에 그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태영이는 두살 때 난청 판정을 받았다. 설마 했던 박씨는 눈 앞이 캄캄했다. 그래도 그녀는 아들을 정상적으로 키워보겠다는 생각으로 아이를 엎고 대구대 난청클리닉을 부지런히 다녔다. 다섯살 때부터는 일반 언어클리닉에 다녔다. "어렸을 때 클리닉을 별도로 다니는 것 외에 다른 아이와 차이가 없었어요. 피아노학원, 태권도장, 어린이집, 유치원도 보냈어요."

박씨는 다른 엄마들보다 2배 이상 태영이에게 이야기를 해줘야 했다. 난청이다 보니 수다쟁이처럼 하나하나 설명을 해줘야 했던 것. 사자를 가르쳐줄 때도 단순히 '사자'라고 하지 않고 울음소리를 흉내내야 했다. 그렇게 해야 소리의 변별력을 키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태영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학교 생활에 적응을 잘할 수 있을까 항상 노심초사했다. "초교 땐 일주일에 3, 4차례 정도 학교에 가서 환경정리도 하고 청소도 하면서 다른 학생들에게 '태영이를 잘 부탁한다'고 통사정도 했어요." 태영이가 소리를 듣지 못해 산만하다 보니 수업시간에 10분을 자리에 앉아있지 못했다. 집중을 못해 그때 그때 관심있는 것을 만져보기 위해 왔다갔다했다. 박씨는 "다른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학교 봉사에도 적극 참여하면서도 항상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다"고 고마워했다.

박씨는 태영이가 어릴 때부터 많은 것을 배우게 했다. 태영이는 초교 때 IQ가 130일 정도로 머리가 좋아 모든 것을 빨리 깨우쳤다. "컴퓨터를 일찍부터 배우게 했어요. 재능을 빨리 깨우쳐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했죠. 컴퓨터뿐 아니라 영어, 수학, 한문 등 과외도 많이 시켰죠. '미운오리'가 되지 않도록 말이죠."

사격은 태영이가 초교 6학년 때 처음 접했다. 처음엔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 시작했는데, 뜻밖에 재능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 "컴퓨터와 사격 중에 무엇을 택할지 진로에 대해 고민했어요. 아무래도 컴퓨터가 경쟁이 심하니까 사격을 하는 것이 좋다고 결론을 내렸죠." 그렇게 해서 사격부가 있는 입석중학교에 입학했고 중2 때 문화관광부장관기 전국사격대회에서 개인상을 받기 시작한 이후 각종 대회에서 여러 차례 상을 받았다는 것.

그녀는 항상 태영이에게 친구처럼 같이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초교 6학년 때 핸드폰을 사주면서 많게는 하루에 20통의 문자를 보내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박씨는 "그렇게 해서 아이가 혹시 소외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태영이에 대해 큰 욕심은 없다. 지금처럼 항상 자신감을 갖고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기를 바랄 뿐이다.

글·사진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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