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게티 웨스턴은 정통 서부영화의 변종이다.
이탈리아 특유의 왁자지껄한 과장이 버무려진 무협지 스타일이다. 정통과 구별하기 위해, 또 생산지 표시를 위해 '스파게티'를 붙였다.
그 대표작이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1964년)다. 당시 TV에서 조연으로 활동하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세계적인 배우로 만든 작품이다. 2편 격인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1966년)는 영어제목을 '좋은 놈, 나쁜 놈, 못난 놈'(The Good, The Bad, The Ugly)이라고 달았다.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모티브로 뽑은 영화다. 황량한 서부를 만주로, 무지막지한 멕시코 군대를 일본군으로 변형해 세 '놈'이 활극을 벌인다.
1930년대 만주. 청나라 때 숨겨진 보물의 위치를 그린 지도가 발견된다. 일제는 이 보물로 태평양 전쟁을 승리로 전쟁 군비로 사용하려고 하고, 여기에 현상금 사냥꾼 도원(정우성)과 사악한 총잡이 창이(이병헌)와 얼렁뚱땅 고수 태구(송강호)가 가세해 보물지도를 두고 쟁탈전이 벌어진다.
강호의 고수로 서로 구원(舊怨)이 있는 셋이 앞서고, 그 뒤를 일본군과 마적단이 달라붙으면서 쫓고 쫓기는 대추격전이 계속된다.
서부영화의 매력은 남성적 본능과 덧없는 욕망이다. 선과 악의 경계도 총알보다 가늘고 , 삶과 죽음의 무게도 황야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보다 가볍다. 거센 총격전의 끝, 먼저 총을 뽑아야 하는 대결 장면에서 언뜻 느껴지는 고요함은 마초적 낭만의 극치다.
김지운 감독이 오마주(원작에 대한 경외심)하려고 한 것도 바로 아련한 옛사랑의 그림자와 같은 남성적 비장미다. 레오네가 서부의 낭만을 '스파게티'로 그렸다면, 그는 '김치' 스타일로 재구성하고 싶어 한다.
순제작비 174억원. TV만 틀면 '놈놈놈'이 나오니 마케팅비도 아마 천문학적일 것이다. '놈놈놈'이 지면 한국영화가 진다는 듯 이 한 편의 영화에 '올 인'하는 분위기다.
'조용한 가족' '반칙왕' '달콤한 인생' 등으로 평단과 관객의 시선을 모으고 있는 스타일리스트 김지운 감독에 한국 최고의 남자 배우 정우성, 송강호, 이병헌이 투입됐다. 외형적 측면에선 이만한 스케일이 없어 보인다.
도입부의 열차 장면을 비롯해 15분에 달하는 후반부의 사막 전투신, 10분마다 터지는 총격전 등 일찍이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는 강렬한 액션과 스펙터클이 펼쳐진다. 광활한 만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볼거리도 색다르다.
만주는 한때 한국영화에서 주요한 배경이 된 적이 있었다.
1962년 임권택 감독의 '두만강아 잘 있거라' 를 비롯해 만주 벌판에서 독립을 위해 마적과 일본군에 대항해서 싸우는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이들 영화들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처럼 항상 마지막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동지를 떠나보내고 주인공이 장렬하게 최후를 맞아 극장 안을 눈물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놈놈놈'은 단조로운 한국영화에 새로운 액션활극을 선사한 점이 눈에 띈다.
그러나 서부영화의 비장미는 살아나지 못했다. 세 명의 '놈'에게 비중이 고루 분산되다 보니 대결 구도는 다소 억지스럽고, 치고 달리는 추격전이 굴곡 없이 평행선을 긋는다.
빈약한 스토리를 액션으로만 끌고 간다. 그래서 관객이 쉽게 지친다.
세 명 중에서 이병헌의 캐릭터가 가장 꿈틀대며 생동감이 넘친다. 검은 의상에 살을 빼고, 눈 밑까지 그늘이 진 그의 눈빛은 광기가 서려 있다.
그러나 정우성은 예쁜 소품 같고, 송강호는 황야에 뒹구는 단지처럼 겉돈다. 과묵함 속에서 솟아나는 코믹함이 웨스턴의 매력임에도 송강호의 웃음은 의도적이고 과잉이다. 무심하게 뱉는 특유의 개그가 혼자만의 것이 되고 있다.
정통 웨스턴에서 벗어나고, 스파게티 웨스턴과도 다르게 자기 식의 '김치 웨스턴'을 버무리고 싶었지만 그의 색깔이 잘 묻어나지는 않았다.
영화마다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있는 김지운 감독의 새로운 도전기 정도에 머무는 것이 아쉽다.
러닝타임이 희한하게 '석양의 무법자'와 같은 139분이다. 칸 영화제에서 소개된 버전에서 16분이 추가됐고, 그것은 대부분 마지막 추격전이었다. 어차피 비싸게 찍었으니, 그거라도 보여주자는 의도인가? 15세 관람가.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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