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의 필름통] 스크린 싹쓸이 논란

입력 2008-07-19 06:12:56

지금 생각해도 참 순진했다.

대구에 멀티플렉스가 처음 문을 연 날이었다. 그날 극장 대표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스크린이 늘었으니까, 대구를 비켜가는 좋은 영화도 개봉하죠?"라고 물었다. 대구의 스크린이 적어 좋은 영화들이 극장에 상영하지 못하는 사실이 무척 안타까웠던 때다.

서울서 온 그 극장대표는 "그럼요. 그러자고 멀티플렉스를 만든 것인데요"라고 말했고, 기자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여전히 좋은 영화는 찬밥이었고, 흥행영화는 프린트가 몇 벌씩 내려와 극장을 장악했다.

늘 시끄럽기만 하고 '소득'(?) 없는 것이 '스크린 싹쓸이' 논란이다.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놈놈놈)이 한국영화 사상 최다인 700여개 스크린에서 개봉돼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현재 전국 극장의 스크린 수는 2천여개. 전체 스크린의 3분의 1을 '놈놈놈'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대구에도 사정이 비슷해 각 극장마다 평균 3~5관에서 '놈놈놈'을 상영하고 있다. 대구CGV는 12개관 중에서 6개관에서 개봉해 50%이다.

그동안 한 영화의 스크린 독점 논란은 여름 흥행철마다 반복됐다. 2006년에는 '괴물'이, 지난해에는 '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에서', '스파이더맨3' 등이 각각 9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싹쓸이하기도 했다. '괴물'이 역대 최다인 620개였으니 '놈놈놈'은 한국영화 사상 가장 큰 규모이다.

옛날 단관 시절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예전에는 프린트 벌수가 12벌 이내로 제한돼 있었다. 그래서 각 시도에 한벌 정도씩 배정돼 흥행영화의 경우 극장 앞에 장사진을 치거나, 한편이 2, 3달씩 상영되기도 했다. 또 한 프린트로 2개관에 상영하다가 사고가 나는 '시네마 천국'에서와 같은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1990년 13벌, 1991년 14벌로 매년 1벌씩 늘이다가 1994년 프린트 벌수 제한이 완전히 철폐됐다. 어떤 영화든 여유만 되면 수백개 프린트로 만들어 극장에 뿌릴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스크린을 3분의 1이 한 영화가 상영되면서 다른 영화의 상영기회가 박탈되고, 관객의 선택권이 제한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외화의 경우 한목소리로 비판을 외치던 것이 '놈놈놈'에서는 갈라지는 듯하다. "기대작인 만큼 흥행에서 성공을 거둬야 불황에 빠진 한국 영화계가 살아나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는 옹호의 목소리다.

스크린 싹쓸이는 라인업을 늘려 한꺼번에 흥행몰이를 하겠다는 전략이다. 입소문을 기대할 것도 없고, 마케팅비도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 '한방'에 끝내겠다는 계산이다.

그런데 이러한 논란이 항상 부닥치는 부분이 "내 극장 가지고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당신이 왜?"라는 말이다. 대구 첫 멀티플렉스도 그런 식이었다.

그래서 이 논란은 항상 공허해지고, 좋은 영화를 보기 위한 노력은 늘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대구 같으면 예술영화전용관인 동성아트홀을 찾거나, 아니면 어렵게 DVD를 구해 보는 수밖에 없다.

하긴 힘들게 오르는 산이 기억에 남듯, 좋은 영화도 노력 끝에 보는 것이 더 기억에 남기는 한다.

김중기기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