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木槿通信(목근통신)'을 다시 읽으며

입력 2008-07-16 10:23:37

'木槿通信(목근통신)'을 다시 읽는다. 출간된 지 반세기가 넘은 '목근통신'을 오늘 다시 읽어야 하는 심중이 열대야에 옥탑방처럼 후끈하다. '목근통신'이 무엇이던가. 34년간이나 일본에서 살았던 작가 김소운이 1952년 대구에서 펴낸 '일본인의 오만과 편견을 통렬히 비판한 책'이다.

일본인의 모멸과 학대에 대한 민족적 항의를 담은 서간체 수필이다. '목근통신'은 일본잡지 주오고론(中央公論)에 번역 게재되면서 일본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이 '목근통신'을 다시 읽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지칠 줄 모르는 도발에 대한 우리의 구태의연한 대응 때문이다. 일본은 다시 '독도왜란'을 일으켰고, 우리는 경북도의 정관계 인사를 비롯한 400여명의 국민들이 독도에서 규탄대회를 열었다. 각계의 성명이 터져나오고, 정부는 늘 그랬듯이 또 강경대응 방침을 밝혔다. 도대체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이 독도분쟁이 도대체 몇 년째인가. 저들은 왜 늘 그랬고, 우리는 왜 지금도 이렇게밖에 못하는가.

한국전쟁으로 비롯된 피란시절 한때를 대구 향촌동에서 보내기도 했던 김소운은 전쟁의 와중에도 일본의 유명 잡지 '선데이 마이니치'에 실린 한국을 비하하는 대담기사에 분노를 느낀 나머지 '목근통신'을 썼다. 일본 식민통치의 잘못과 그로 인해 빚어진 참담한 일들, 그리고 패전국 일본이 보여준 참회의 여부와 그 허위성을 조목조목 지적한 글이었다.

따지고 보면 국토의 분단과 동족 간의 전쟁 또한 우리가 못난 탓이겠지만, 일제의 강점과 식민통치에서 파생된 일이 아니던가. 그런데 일제가 패망하고 민족이 해방된 지 반세기를 훌쩍 넘긴 오늘까지도 우리는 일본 정치인과 각료들의 8·15 야스쿠니 신사 참배설을 두고 똑같은 화두에 빠져있다.

시나브로 독도 영유권을 강변하고 역사 교과서 왜곡을 기도하며 툭하면 망언을 내뱉는 일본과의 신경전도 변함이 없다. 그 지겨운 샅바싸움이 아직도 여전하고, 그래서 '목근통신'의 해묵은 목소리에 또다시 귀기울여야 하는 현실이 차라리 역겹다.

몇 년 전 눈여겨보았던 강우석 감독의 영화 '한반도'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고종황제를 독살하는 그때의 참상과, 일본 외상이 청와대에서 한국 대통령에게 호통을 치는 오늘의 현실. 일제의 영광(?)이 이 땅에서 고스란히 되살아난 듯한 영화의 장면을 쳐다보고 있는 것은 차라리 형벌이었다.

작가 김소운의 말처럼 잘나건 못나건 한 민족의 정신적 지형적 체질은 50년, 100년이 지나도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더니…. 원심과 구심, 그리고 거시와 미시가 얽히고 설킨 한일 두 나라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다가올 내일이 참으로 암담할 따름이다. 우리는 늘 그렇게 당하기만 했고, 그들은 언제나 그렇게 당당할 뿐인가.

도대체 우리는 무슨 업보로 지구상에 둘도 없는, 저리도 별난 종족과 이웃하게 되었던가. 한국의 미제라블(悲劇)은 한국의 수치이기 이전에 바로 자신의 비인도적인 政治惡(정치악)의 바로미터였음을, 그리고 결국은 스스로의 불행임을 모르는 저 섬나라 倭敵(왜적)과….

간교한 일본인의 속성과 일본사회의 허위의식을 비판하면서도 일본을 객관적으로 바로 알고 그들의 장점을 배우려고 했던 '목근통신'은 그래서 두 나라의 미래를 위한 한일 두 나라의 국민 모두가 읽어야 하는 것이다.

오랜 세월 우리 한반도는 대륙의 문화를 알뜰히 갈무리해 열도에 전해온 無償(무상)의 乳母(유모)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데 그 은의에 대한 저들의 보답은 무엇이었던가. 母土(모토)에 대한 난자와 능욕이 아니었던가. 긴 세월 저질러온 온갖 죄업과 어머니 같은 이웃나라의 뼛속 깊이 새겨놓은 증오에 대한 반성은커녕 적반하장의 惡業(악업)만 되풀이하려 드는 저 패륜적 집단에 무엇을 기대하랴.

결국 현해탄에 가로놓인 숙명적인 舊怨(구원)의 장벽과 어두운 안개를 걷어내야 하는 일은 역설적으로 오늘 힘없는 우리의 숙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똑같은 과오를 거듭해온 우리의 업보이기도 한 것이다.

영화 '한반도'에서처럼 국운이 풍전등화였던 100년 전의 형국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늘 일본은 다시 침략의 마수를 뻗치고 있는데, 정녕 사무치는 울분을 단 한번도 터트려보지 못한 채 제 가슴만 쳐야 하는 이 모진 현실이 '목근통신'을 다시 읽게 한다. 8·15 광복절을 한 달 앞둔 오늘 우리의 자화상이….

조향래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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