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남 알프스' 신불산

입력 2008-07-10 14:02:59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신불산

가슴에 맺히고 쌓이는 게 많은 시절이다. 맺히고 쌓인 것을 제대로 털어내지 못하면 결국 울(鬱)이 되고 만다. 바로 울분, 울화가 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술에 의지하며 맺히고 쌓인 것을 해소하려 하지만 분명 한계가 있기 마련. 그 보다는 자연을 찾는 게 몸에도 좋고 정신적으로도 훨씬 낫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미덕이 엄청나게 많지만 가장 큰 미덕은 '가슴에 맺히고 쌓인 것을 삭여주고, 털어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이유에서 울산 울주군에 있는 신불산과 파래소폭포는 한번쯤 찾을만한 곳이다.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신불산!

수년 전부터 산악인들을 중심으로 자주 회자되는 '영남알프스'. 경북·경남·울산에 걸쳐 있는 해발 1천m가 넘는 7개의 산들을 통틀어 일컫는 표현이다. 그 우두머리격인 가지산을 비롯해 신불산·운문산·재약산 등 영남 알프스에는 아름답고 빼어난 산들이 많다.

한국 100대 명산의 하나인 신불산(1209m)을 찾아가는 날, 며칠 동안 이어지던 장마가 잠시 숨을 고른 덕분에 하늘은 청명하다. 경남 밀양에서 울주군으로 넘어가는 24번국도를 따라 가다 보면 69번도로를 만나게 된다. 69번도로는 울주군과 양산시에 걸쳐진 배내골을 따라 난 도로. 도로를 20여분 달리면 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 상단이란 표지판이 보인다. 간월재를 통해 신불산을 오르려면 상단 진입로로 접어들어야 한다.

간월재까지는 승용차로 쉽게 오를 수 있다. 이곳을 통해 간월산이나 신불산 산행을 시작하게 된다. 간월재에만 올라도 눈이 '시원해진다'. 완만한 능선은 곡선의 아름다움을 한껏 보여주고, 푸르름을 더해가는 억새는 싱그럽기 그지없다. 나무가 없는 초원의 풍경은 유럽의 알프스를 떠올리게 한다. 초원의 고즈넉한 풍경은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평일이어서 인적이 더욱 한산한 것도 마음에 든다.

간월재에서 신불산 정상까지는 1.7km 거리. 왕복하려면 1시간30분 정도를 잡아야 한다. 산행길은 나무 계단이라서 오르는 데 어려움이 없다. 일부 구간은 경사가 급하기도 하지만 길 옆에 있는 줄을 잡고 오르면 그다지 힘이 들지 않는다. 30여분 정도 가파른 계단을 오른 후부터는 본격적인 능선 산행이다. 저멀리 신불산 정상이 보인다.

굽이치는 영남알프스의 산맥들을 바라보며 걷는 산행은 가슴에 맺히고 쌓인 것을 털어내는 데 알맞다.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세상사는 하찮은 것으로 여겨질 뿐이다. 그리고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아름다운 곳들이 참 많구나" "힘들지만 세상은 살아볼만한 곳이다"는 등의 생각을 갖게 된다.

본래 신불산은 가을 억새로 유명한 곳. 그렇지만 여름의 초입에 찾은 신불산도 색다른 멋을 선사한다. 세찬 바람을 이기며 푸른 빛깔을 더해가는 억새에게서는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감탄성을 터뜨리며 걷는 사이 신불산 정상에 닿는다. 정상에 서니 새삼 높은 산이 멀리보고, 높은 산이 많이 품고, 높은 산이 넉넉하고 위용 있음을 깨닫게 된다. 불현듯 산을 닮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가을 억새로 유명한 신불평원과 통도사를 품고 있는 영축산의 절경도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펼쳐진 공룡능선은 장관이다. 신불산에서 마음은 한없이 허허로워진다.

▲가슴속 찌꺼기 씻어주는 파래소폭포!

파래소폭포를 보려면 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052-254-2124)을 거쳐야 한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가에 자리잡은 휴양림은 몸과 마음을 풀어놓기에 좋은 곳. 휴양림에는 숲속의 집, 산림문화휴양관 등 숙소가 여럿 있고 야영데크도 마련돼 있다.

휴양림 상단지구에 차를 세워두고 파래소폭포를 찾아 나섰다. 계곡을 따라 1km 정도를 내려가야 폭포를 만날 수 있다. 시원한 계곡과 숲그늘을 따라 걷는 산책로는 매우 쾌적하다. 30여분쯤 걸었을까. 멀리서 폭포의 웅장한 소리가 들린다. 파래소폭포는 먼저 그 세찬 소리로 사람들을 맞는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폭포는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15m 높이에서 폭포수가 함성을 지르며 떨어진다.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지는 폭포를 보니 몸과 마음이 깨끗해진다. 옛날 기우제를 지내면 바라던 대로 비가 내렸다고 하여 '바래소'란 이름이 유래됐고, 그후 파래소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요즘에도 소망을 비는 사람들이 이 폭포를 많이 찾는다. 검은듯 푸른 수면 위에는 산 그림자마저 초록색 물빛으로 비친다. 둘레가 100m나 되는 연못의 중심에는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는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원시림이 우거진 폭포 주변은 더위를 식혀주는 명소이기도 하다.

양말을 벗고 폭포의 물에 발을 담근다. 1분을 못견딜 정도로 물은 차다. 깍아지른 듯한 절벽을 타고 힘차게 흘러내리는 폭포에 가슴이 후련해진다. 인적은 끊어지고 깊은 계곡에는 폭포 소리만이 가득하다. 온종일 폭포 앞에 앉아 있어도 좋을 것 같다. 파래소폭포 아래, 잔돌이 다 들여다 보이는 저 물처럼 이 마음도 맑아질 수는 없을까란 상념에 잠겼다.

-둘러볼 만한 곳

▲울주군 석남사=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에서 울주 언양읍으로 가는 길에 있다. 가지산 혹은 석안산이라고 하는 산의 남쪽에 있다 해서 석남사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남종선의 시조인 도의선사가 가지산에 창건한 선찰이 석남사다. 비구니들의 수도처로서 많은 비구니들이 정진하고 있다. 대웅전·극락전·정수원·강선당 등의 건축물이 있으며 보물로 지정된 석조부도 1기와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3층석탑, 수조 등의 문화재가 있다. 한겨울 눈이 내려 온 절을 하얗게 만들 때 가지산과 어울려 절경을 이루는 모습은 어디에 비겨봐도 결코 뒤지질 않는다.

▲밀양시 얼음골=밀양에서 울주군청으로 넘어가기 전에 얼음골이 있다. 천황산 북쪽 중턱 해발 600~750m의 골짜기 약 3만㎡ 지대를 말한다. 3월 초순경에 얼음이 얼기 시작해 7월 중순까지 유지되며, 삼복더위를 지나 처서가 되면 바위틈새의 냉기가 점차 줄어든다. 다른 관광지와는 달리 초여름부터 늦가을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신불산' 가는 길

신대구-부산간 고속도로가 놓이면서 신불산을 찾는 길이 훨씬 편리해졌다. 부산으로 가는 이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밀양나들목에서 내려 울산 언양으로 가는 24번국도를 따라 가면 된다. 가는 도중에 밀양 얼음골·호박소 등 명소들이 보이고 밀양과 울주를 잇는 석남터널을 지나게 된다. 신대구-부산간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경부고속도 보다 눈이 즐겁다. 석남터널 휴게소에서 보는 고헌산의 풍경도 장관이고, 인심좋은 휴게소의 울산큰애기 아주머니가 서비스로 건네는 동동주 한 잔에 여행의 피로가 풀린다. 석남터널을 지나 석남사로 가는 24번도로로 가지 말고, 69번도로를 따라 가면 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 표지판이 나온다. 대구에서 간월재까지 차량으로 넉넉잡아 2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언양불고기를 맛본 뒤 경부고속도로 서울산나들목을 통해 대구로 오는 게 편리하다.

-맛집-음식점 '언양원조삼거리불고리'

신불산 들목인 울주군 언양읍은 한우숯불구이로 유명한 곳. 요즈음에는 두동면 봉계리 한우숯불구이가 인기 절정이지만 본래 언양읍의 한우숯불구이가 맛과 전통이 깊다.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언양읍내'언양원조삼거리불고기'(052-262-1322)를 찾았다. 언양시외버스터미널 후문 부근에 있어 찾는데 어렵지 않다.

1인분(160g)에 1만9천원인 한우특미를 시켰다. 마블링 등 눈으로 보기에도 고기의 육질이 좋았다. 숯불에 구워 먹는 쇠고기의 맛은 일품. 같이 나오는 야들야들한 유명한 언양 미나리에 싸먹는 쇠고기 맛도 한동안 잊지 못할 맛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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