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남의 '대롱'도 인정하자

입력 2008-07-10 10:54:22

'소통'과 담쌓은 사회 안타까워/함께 머리 맞대 해결방법 찾아야

'닭이 길을 건너간 이유'라는 명제(?)가 있다. 그 이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지? 롤프 브레드니히가 쓴 '위트 상식사전'에 등장하는 역사 속 인물들은 다음과 같은 기발한 답들을 내놓았다. 칼 마르크스-중산층의 시민투쟁을 피하려고. (노선 수정 후엔) 그것은 역사적으로 필연적인 일이었다. 히포크라테스-췌장에서 태만함을 유발하는 체액이 과다 분비되었기 때문. 닐 암스트롱-지금까지 어떤 닭도 가보지 못한 곳에 도달하기 위해. 찰스 다윈-논리적으로 볼때 나무에서 내려온 닭이 다음 단계로 거칠 수 밖에 없는 행동이었다. 사담 후세인-혁명적 테러리스트들의 폭력적인 도발이었다. 마틴 루터 킹-그 닭은 꿈을 꾸었던 것이다. 수많은 닭이 평화롭게 길을 건너는데 아무도 그들에게 그 이유를 묻지 않는, 그런 꿈을 꾼 것이다. 조지 W 부시-닭이 왜 길을 건너려고 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신경쓰지 않는다. 다만 그 닭이 우리 편인지 아닌지만 알고 싶을 뿐이다. 그 닭은 우리의 동조자, 아니면 적이다. 중간은 없다. 토니 블레어-내 의견은 조지의 생각과 전적으로 일치한다….

유머일 뿐이지만 그들의 평소 언행이나 가치관과 절묘하게 일치한다. 한낱 닭이 길을 건너간, 정말 별 것 아닌 일에 대해서도 저마다 이처럼 견해가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철학'가치관'경험 등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

물 맑은 개울이나 얕은 강가에서는 송사리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선두를 따라 무리 전체가 재빠르게 움직이는데 눈깜짝할새 어찌나 방향을 홱 홱 잘도 꺾어 바꾸는지 신기할 정도다. 철새들의 군무도 그러하다. 하늘을 까맣게 덮은 새떼가 선두 그룹을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대개 사람 사는 세상은 언제나 제각각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하지만 자연계에서는 물 흐르듯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쇠고기 파동으로 요즘 우리 사회는 호된 몸살을 앓고 있다. 촛불시위는 국민건강 보호라는 순수한 목적으로 시작됐다. 촛불을 든 사람들은 그들대로, 침묵하는 사람들은 또 그들대로 나름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촛불 시위가 길어지고 처음의 순수성이 점차 변질되고 있다는 의혹을 받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하기도 한다.

이런 와중에서 또한가지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것이 있어 심사가 편치 않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갖는 반목과 적대감이 활화산처럼 마구 분출되는 사회 분위기가 우리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특히나 인터넷상에서 촛불시위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치고 받는 욕설과 들끓는 증오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소통'과는 담 쌓고 있는 지를 실감하게 한다. 며칠전 서울 청계광장에서의 촛불집회때 한 20대 재미교포 여성은 순진하게 시위대와 토론을 시도하려다 봉변을 당했다. 쇠고기 졸속 협상을 이유로 대통령은 '쥐××'로 조롱당하고 거의 저주의 대상이다시피 돼있다. 어느 힙합 가수는 느닷없이'쥐는 살찌고 사람은 굶는다'는 1960년대식 쥐잡기 운동 포스터를 연상케 하는 티셔츠를 입고 방송에 나와 물의를 빚기도 했다. 심지어 '대통령을 암살하자'는 극단적 폭언도 인터넷 세계에서 횡행하고 있다. 할 소리,못할 소리 거침없이 터져나오는 세상이 무섭다.

'管中窺豹(관중규표)'라는 고사성어는 좁은 시야를 빗댄 말이다. 대나무 대롱으로 표범을 보면 작은 반점 한두개 정도만 보게 된다. 극히 일부로 전체를 논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는 모두 어쩔 수 없이 저마다의'대롱'으로 세상을 보려 한다. '닭이 길을 건너간 이유'처럼 표범의 반점을 두고도 얼마든지 다른 의견들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자기 대롱 속의 반점만 진짜고 가치있다고 고집하면서 남의 대롱 속 반점은 배척하기 쉽다는데 있다. 타인의 대롱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서로 어긋진 것들이라도 함께 내놓고 머리를 맞대다보면 해결 방법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다름'에 대한 포용이 퍽 아쉬운 요즘이다.

全 敬 玉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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