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위계의식 수평적 의견교환 막아"
-토론이 잘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토론은 생각이 다를 때 의견을 조정하는 것이다. 가치관, 이념, 종교 등의 갈등은 토론이나 협상, 타협의 여지가 거의 없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상적 이해관계는 그렇지 않다. 충분히 토론을 통해 중간점을 찾을 수 있다. 우리 근대사를 보면 한국전쟁을 전후해서 가치 및 이념대결이 사회의 가치 영역을 압도해 왔다. 냉전 반세기의 산물이다. 정치적 이념 대결이 너무 강력했다. 문제는 일상적인 문제까지 이념 대결로 환원된다는 점이다. 모든 문제를 이념 대립으로 환원하려는 20세기적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왜 이렇게 토론에서 이기려고 애를 쓰는가?
▶'승자독식의 사회구조'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일상에서 우리가 안고 있는 후진적 구조다. 경쟁은 어디에나 있지만 우리나라는 승자독식 구조가 너무나 강력하게 문화처럼 자리 잡고 있다. 패자는 모든 것을 다 잃는다. 수십년간 군사정권 체제 하에서 그것을 봐왔다. 학교 교육뿐 아니라 어린이 놀이에서조차 1등이 모든 것을 가져가는 사회다. 패자 부활전은 없다. 토론은 승자와 패자 없이 모두에게 좋은 제3의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다.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
-대구 사람들의 토론 문화는 어떻게 볼 수 있나?
▶일상에서의 권위주의는 여전히 강력하다. 부모·자식의 관계, 교사와 학생, 상사와 부하, 선임자와 후배 사이에 전통적 위계질서가 강하다. 이런 수직적 질서는 사적 영역에서는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공적 영역, 즉 토론이나 정책 결정에서 수직적 위계 질서가 개입하면 안 된다. 토론은 기본적으로 수평틀이다.
대구는 250만 도시답지 않게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한 사람 건너면 다 아는 식이다. 일차원적 사적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것에서 해방돼야 한다. 토론을 하면서 선후배가 걸리고, 친구·지인으로 걸리면 권위적 질서가 되살아난다. 전근대적인 사회라는 의미다. 교육과도 관련이 있다. 근대 시민의 자질이나 덕목에 대한 교육은 없다.
-TV 토론 진행자로 오래 활동했는데, 대구 사람들의 토론 수준은 높은 편인가?
▶TV 토론은 사실 일상 토론과는 다르다. 쟁점만 분명하게 드러나면 될 뿐 굳이 제3의 결론에 도달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평소 주장이 강하던 사람을 만나 패널로 섭외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구 사회에서 그렇게 이야기했다가 돌아오는 부정적 결과에 대한 복잡한 계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어영부영 말하고 만다. 공무원의 경우, 그냥 써준 답을 읽는다. 자기 업무와 관련해 책임 있는 사고를 못하고 입장도 밝히지 못한다. 이후 문책이나 조직에서 '왕따'가 될까봐 두려운 것이다. 물론 대구 사람들은 토론할 때 '말꼬리'를 잡는 경우가 거의 없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측면도 있지만, 행여 말꼬리 잡았다가 돌아올 후유증을 염려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수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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