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일 대구시장을 사석에서 만나면 어떨까?
그는 얼핏 날카롭게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걸쭉한 입담과 재치를 곧잘 보여준다. 우스갯소리를 분위기에 맞춰, 참석자의 면면에 맞춰 자유자재로 구사하는데다 레퍼토리의 다양함까지 겸비해 좌중을 즐겁게 한다. 외국 손님들에게도 'Y담'을 유창한 영어로 들려주고 분위기를 휘어잡을 정도이니 국제적인 감각과 인간적인 매력을 두루 갖춘 시장임에 틀림없다. 김 시장 같은 재사(才士)는 어딜 가도 찾기 힘들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구市政(시정)은 어떨까? 솔직히 김 시장의 매력이 시정에 그대로 반영된다고 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제대로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는 말이 안팎에서 나오는걸 보면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것 같다. 그 빛나는 유머감각과 재기는 다 어디로 갔는지, 딱딱하고 설익은 몸짓만 잔뜩 보일 뿐이다.
어제 밤늦게까지 대구시가 지난달말 내놓은 '민선4기 2주년 시정 성과와 향후 정책과제'라는 보도자료를 다시한번 훑어봤다. 김 시장이 재임 2년간 이룬 성과물을 75쪽에 걸쳐 나열해 놓았는데 언뜻 '많은 일을 했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하나씩 뜯어보면 '제대로 이룬게 없다'는 생각이 드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물론 김 시장이 기업유치를 위해 노심초사한 점은 잘 알고 있다. 그 자료에도 무려 29개의 국내외 기업을 유치해 성장기반을 착실히 다진 것으로 돼 있다. 대단한 일이긴 하나 그중에는 14개의 컨택센터가 포함돼 있어 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기에 어색한 구석이 많다. 규모가 작은 기업 수백개를 유치하더라도 큰 기업 하나만한 효과를 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기업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 입지를 선택하지, 시장의 능력이나 대구라는 도시 브랜드를 보고 찾아오지 않는다. 그러기에 우리는 김 시장에게 큰 걸 기대하지 않는다. 시민들의 가슴이 와닿는, 생활에 필요한 시정을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펴 줄 것을 주문한다.
단적인 사례로 많은 시민들이 '대구를 자전거 도시로 만들자'는 테마를 제시했지만 공무원들은 일찌감치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잘 안될 것"이라고 했다. 김 시장은 귀가 엷은 분이니 과감한 행정을 펼치지 못할 것이라는게 그 이유였다. 만약 달구벌대로 양쪽 1개 차로를 자전거 도로로 바꾸면 자동차 운전자들과 도로변 상인들이 불만을 터뜨릴텐데 그분의 성품으로는 이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도 대구시가 내놓은 자전거정책이라는 것이 신천 둔치에 자전거 상설교육장을 만들고 자전거 이용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내놓은게 전부다. 자전거 도로가 없어 목숨 걸고 타야하는 판에 교육장, 인센티브 운운하는 것은 아이들도 코웃음 칠 일이다.
한일극장앞 횡단보도도 마찬가지다. 시민단체나 인근 상가에서 떠들면 '설치 검토'라고 했다가 지하상가 상인들이 들고 일어나면 '없었던 일'로 오락가락하는 것은 김 시장의 리더십과 무관하지 않다. 매사가 이런 식이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다 도리어 모든 사람에게 점수를 잃고마는 답답한 상황이다. 이쯤되면 '優柔不斷(우유부단)'과 '左顧右眄(좌고우면)'이라는 고사성어를 자연스레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시민들의 자그마한 일상생활조차 챙기지 못하면서 경제나 국제행사 같은 거시적인 문제를 앞세우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남녀관계나 부부 사이에서 보듯 감동은 그리 거창한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김 시장은 이제 임기 4년중 반환점을 돌았다. 임기 마지막 해는 선거가 있는 만큼 그 자신의 꿈을 펼치는데 채 1년도 남지 않았다. 그 1년이라는 시간이 금방 지나갈 듯 하지만, 그렇다고 그리 짧은 시간도 아니다. 시민들에게 작은 감동을 주고 웃음을 줄 만한 시간이 충분하게 남아있다.
박병선 사회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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