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님 고추 만지면 돼, 안돼?' 동한이한테서 또 엉뚱한 문자가 왔다. 녀석이 내게 시도 때도 없이 보내는 단골 문자 중 하나이다. 늘 그랬듯 '안돼, 엄마한테 혼나' 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러자 바로 '동한이는 간호사야?'라고 묻는다. '아니야'라고 답장을 보내니 '그럼 의사야?' 한다. 내가 '의사 아니야'라고만 보내면 동한이는 또 '소방관이야?' 라고 하거나 '청소부야?' '버스기사야?' 혹은 '선생님이야?' 라고 물을 것이 뻔하다. 그래서 '동한이는 첼리스트야' 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러자 이번엔 '파파를 제사상에 갖다 놔야지' 한다. 피식 웃으며 그냥 '동한아~ 사랑한데이~' 라고 답장을 보냈다. 녀석은 제가 기대한 답을 얻었는지 아니면 내 대답이 저를 너무 어이없게 만들었는지 더 이상 문자를 보내지 않는다.
동한이는 자폐장애를 가진 18세의 소년이다. 자폐장애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제 틀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주변상황에 대한 상호작용 없이 혼자 고립되어 살아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동한이는 아주 특별하게도 이렇게 엉뚱한 말투로 세상에 농담을 던질 줄 안다. 늘 얼굴 가득 짖궂은 웃음을 머금고 건들건들 걸으며 남들에게 장난걸기를 좋아한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슬그머니 다가가서 눈 깜짝할 사이 단김에 넥타이 풀기, 머리를 묶은 사람의 장식 머리핀이나 머리끈 낚아채기, 주머니전화의 비밀번호를 주인 몰래 바꿔놓기 등이 녀석이 즐기는 장난들이다. 또한 녀석은 첼로 연주를 무척 좋아한다. 전업 첼리스트로서의 아주 특별한 꿈을 가지고 있다. 비록 우리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참 아름다운 소년 아닌가! 그래서 난 이들을 천사라 부른다.
지난주 모 방송국에서 방영된 사미인곡이라는 프로그램에 스물네 살의 피아니스트 은성호와 그의 어머니의 일상이 소개되었다.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으며 피아노와 클라리넷을 독학으로 익혀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할 만큼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하는 성호 역시 전형적인 자폐장애를 가진 친구이다. 감정표현에 서툴러 언제나 무표정하고 근엄한 얼굴을 하고 있는 성호는 완벽한 정확함에 집착한다. 따라서 성호는 장난을 치거나 농담을 할 줄 모른다. 그에겐 예외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루 하루 그날의 할 일에 따른 세밀한 시간표를 비롯하여 버스와 지하철의 노선, 승·하차역과 목적지 등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그것에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예정된 시간에서 지체가 되거나 변경이 되면 불안하여 못견뎌한다.
성호는 사람들의 얼굴과 책의 제목과 컴퓨터 게임, 뉴스, 퀴즈와 스포츠 등에 큰 호기심을 가지고 있고, 그것에 집착한다. 지하철이나 버스 속에서 차안을 헤집고 다니면서 사람들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도 하고 또 그들이 읽는 책의 제목을 하나하나 확인하기도 하는데, 표지를 보기 위해 고개를 무릎 아래까지 낮춰 표지를 들여다보다가 그래도 보이지 않으면 아예 제 손으로 책을 홱 뒤집어서 확인한다. 그때마다 그의 어머니는 아주 죄스런 표정으로 아들이 자폐장애가 있음을 설명하며 결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눈총을 주는 사람들에게 마치 죄인인양 일일이 양해를 구한다.
몇 년 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말아톤'이라는 영화와 수영선수로 화제를 모은 진호 그리고 최근 다큐멘터리로 소개된 후 공익광고에까지 출연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준 가수 이상우씨와 그의 아들 승훈이에 대한 이야기 등으로 인하여 자폐장애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높아진 것은 참 다행스런 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신생아중 적게는 천명당 한명, 많게는 사백명당 한명 꼴로 자폐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태어난다는 것, 그 결과 우리 사회속에 무려 4만에서 10만명 정도의 자폐장애우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더욱이 아직도 이웃의 몰이해와 편견과 반목으로 인하여 자폐장애아를 양육하는 사실을 떳떳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대부분 가정 속에 숨기고 힘들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 그 부담과 고통이 너무 커서 가정이 깨어질 지경이 되었을 때 아이들을 안심하고 맡길만한 전문 양육시설이나 보호시설이 아직 우리 사회 속엔 전무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자폐장애아의 부모들이 아이들보다 단 하루만 더 살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며 절박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하는 한 우리 사회는 결코 행복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조금 남다른 흥미와 소통의 방식을 가졌다 해서 그들을 괴물 취급을 하거나 교정의 대상으로 내 모는 현재 우리사회의 고정관념과 편견이 빨리 사라지기를 간절하게 기도한다.
이상만(돋움공동체 대표·작곡가)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