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품격의 사회로] 시리즈를 시작하며

입력 2008-07-07 09:22:40

지난 60년 우리는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짜리 신생 대한민국이 2만달러 선진국의 문턱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50년. 앞선 나라들은 수백년 걸린 멀고 먼길이었다. 이 과정에서 기본은 무시됐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는 내팽개쳐졌다. 남보다 잘 살기 위해 정의를 외면했고 남보다 앞서기 위해 중상과 모략도 서슴지 않았다. 사회는 갈기갈기 찢겨지고 삶의 격조는 사치처럼 여겨졌다.

지금 우리는 건국 60년을 넘어 새로운 60년을 맞이하는 출발점에 섰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오로지 '잘살아보겠다'는 역사였다면 이제부터는 국민적 잠재력을 한 단계 고양시켜 '품격 있는 사회'로의 시작을 제안하고자 한다. 경제가 바닥인 이때에 '품격'을 논하는 까닭은 더 단단한 미래, 살맛 나는 사회를 열기 위해서다. 사회의 '덕'을 회복하지 않고 공학적인 접근만으로 시시각각 위협하는 국제환경에서 국가의 앞날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인식에서 '품격 있는 사회'의 제안은 출발한다. 더욱이 지속적인 경제발전은 정신적 문화역량 없이 이루어낼 수 없고 정신적 문화역량은 곧 그 사회의 품격이라는 확고한 믿음에서 '품격'을 이야기하려 한다.

서울대 이재열 사회학과 교수는 "한 개인을 평가할 때 재산이나 권력 외에 인품이 중요하듯 한 국가에도 경제성장이나 민주화만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품격이 있다"며 선진국다운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는 성숙한 사회, 즉 품격 있는 사회로의 진입이 절실하다고 강변한다.

사회의 품격은 구성원들이 만들어 내는 향기다. 기업이 세계적 명품을 생산하고 스포츠 선수가 국제적 명성을 얻는다고 해서 품격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품격이란 국가 프로젝트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의 성숙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품격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가져야 할 위엄이나 인품' '사물이 지닌 고상하고 격이 높은 인상'이다. 경북대 김석수 철학과 교수는 "품격은 나보다 남을 배려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이며 궁극적으로 홀로가 아니라 서로가 주체가 되는 열린 광장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며 이런 까닭에 품격은 원천적으로 '마이너스의 미학'이라고 정의한다.

품격은 제 이익만 챙기고 자기 생각만을 내세우기보다는 절제하고 자제하고 인내하고 양보하고 손해 보는 데서 나온다. 아무리 우리사회가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화려한 외양을 갖추었다고 해도 품격 없는 이들이 활개치는 사회는 품격 있는 사회라고 말할 수 없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내 주장만 하는 사람,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 책임의 룰을 지키지 않는 사람, 자원을 물 쓰듯 하는 사람, 돈으로 권력을 사고 권력으로 돈을 쌓고자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넘쳐나는 사회는 아무리 풍요해도 품격과 거리가 먼 사회다.

일본 서점가는 지난해부터 '품격'이란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이런 종류의 책이 무려 100종이 넘는다. 일본은 지금 국가와 개인 사회가 다 함께 품격을 이야기하면서 품격을 갖춘 경제대국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자녀를 위한 예절교육이 붐을 이룬다는 소식이다. 예절교육은 예를 갖춰 말하고 입고 식사하는 예법뿐만 아니라 법과 사회에 대한 배려와 동정, 그리고 경의의 덕목을 보강해 품격 있는 개인이 되기 위해서라고 한다. 선진외국들은 이처럼 개인이 품격을 가꾸어 나가고 있고 품격 있는 사회를 위해 개인과 사회가 다 함께 거대담론을 이끌어 내고 있다.

선진국으로의 도약은 그 사회의 품격을 담보하지 않으면 어렵다. 명실상부한 선진국 진입을 꿈꾸는 새로운 60년의 출발점에서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남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열린 가슴의 '품격사회'를 다시 한번 제안한다.

김순재 부국장 sj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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