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비 오면 마중오는 친구엄마들 부러워

입력 2008-06-28 07:08:58

봄 가뭄을 이기고서 용케도 실하게 여문 매실을 수확하다가 장맛비를 맞았다. 제법 굵은 빗방울이 가지 끝의 몇 알 안 되는 매실을 툭툭 두들기며 떨어진다. 이러한 장마철에 꼭 비상용으로 지니고 다니는 것 중의 하나가 우산이다. 영업을 하는 나로서도 지니고 다니면서도 여간 거추장스럽지가 않다. 요즘이야 판촉물로 받을 만큼 형형색색의 우산들이 흔해서 그리 소중하게 여기지도 않고 있지만 어릴 적 산골에서 살았던 나로서는 이 우산이라는 존재가 아주 귀했었다. 귀했던 만큼 소유에 대한 욕망의 포기인지는 몰라도 별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저 비가 오면 비를 맞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천둥벌거숭이 시절이 있었다. 소먹이고 돌아오던 밭둑 길에서 비를 만나면 토란잎이나 연잎 하나만 덮어쓰면 되었고 논두렁에서 꼴 베다가 비 만나면 비료포대를 덮어쓰면 오히려 더 일하기는 편했다. 행여 운이 좋아 아버지께서 장에 갔다 대나무로 만든 하늘색 비닐우산이라도 하나 사주시면 애지중지 아끼면서 빈곤 속의 작은 풍요나마 오래도록 즐기고 싶었다. 어느 날 우리 가족은 도회지로 이사를 가게 되고 부모님께서는 우리 삼 형제를 키우시느라 늘 직장에 나가셔서 바쁘시고 우리 형제들은 늘 부모님의 사랑에 목말랐던 거 같다.

도회지 학교로 전학을 오고서는 나는 비가 오는 날이 무지하게 싫었다. 하교시간이면 친구들 어머님께서 교문 앞에 기다리고 계시다가 친구들이 나오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우산을 받쳐주고 가는 뒷모습들이 너무나 부러웠었다.

나는 비를 맞고 집에 가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니라 그네들의 뒷모습에서 어머님의 사랑에 대한 상대적 빈곤감이랄까? 아마도 나는 그런 것이 정말 싫었던 모양이다.

오히려 비가 오면 친구들과 러닝셔츠를 흠뻑 적시면서도 마냥 좋았던 그 논두렁의 천둥벌거숭이 같은 고향 땅의 소낙비가 그리워졌다. 고등학교시절 장대비가 뿌리던 어느 날 내가 우산을 안 가지고 학교에 갔을 때 모처럼 어머니께서 우산을 한번 가지고 오신 적이 있는데 어머님의 초라한 모습을 친구들이 볼까봐 부끄러움에 다시 가져가라고 한 적이 있는 것 같다.

그 먼길을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오셨을 텐데 얼마나 섭섭하셨을까?

어느새 불혹을 훌쩍 넘겨 자식을 낳고 키우고 있는 지금. 이제야 자식에게 비 한 방울이라도 안 맞히려는 부모의 우산 같은 마음을 깨달은 것 같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사무실 창가에 서서 우산에 얽힌 부모님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을 굵은 빗줄기에 투영해본다. 올 주말에도 비가 온다는데 이제는 내가 거동이 불편하여 병원에 계신 어머님과 남천둔치 잔디밭 산책로를 거닐면서 작은 우산이라도 한번 제대로 받쳐 드리고 싶다.

이승준(대구 중구 남산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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