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본격화…정부 '물가잡기'에 올인

입력 2008-06-24 10:10:22

7→6→4%, 경제 성장목표 후퇴

'연간 7% 성장 달성'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출범 4개월을 넘기기도 전에 성장 전망치를 4%까지 내려 잡을 만큼 경기침체가 심각한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정부의 성장 전망치는 이제야 '내려왔지만' 이미 경제현장 곳곳에서는 경기침체가 본격화했음을 나타내는 현장이 목격되고 있다. 출퇴근 때 교차로 엉킴현상이 나타났던 대구시내 교차로는 고유가로 인해 '차를 버리는' 사람들이 늘면서 한산해졌고, 뒷걸음질칠 줄 몰랐던 대형소매점도 매출이 하향세다.

정부는 일단 성장에서 물가관리로 정책의 중심을 옮기겠다고 밝힌 바 있으나 경기 부양을 위한 노력도 게을리할 수 없어 정책 당국의 딜레마는 커지고 있다.

◆성장률의 추락

배국환 기획재정부 제2차관이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을 4%로 낮춰 잡았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 정부는 지난 3월까지만 해도 6% 성장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성장 목표치는 결국 내려앉고 말았다.

당초 '경제 살리기'를 목표로 '747(연간 7% 성장, 10년 내 국민소득 4만달러, 10년 내 세계 7대 경제강국)'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인 지난 3월 "7% 성장 능력을 갖춘 경제를 만들되 올해는 6% 안팎의 성장을 하겠다"고 목표치를 1차 수정했다.

하지만 국제 유가가 폭등하기 시작하면서 경기는 급랭했다. 결국 정부는 다시 4% 후반으로 목표치를 내려 잡았다. 당초 올해 유가를 배럴당 90달러대 전후로 전망했으나 130달러 전후로 급등하면서 성장률 전망치 수정이 불가피해진 것.

국내외 주요 기관들도 급등한 국제유가 등 악화된 여건을 반영, 이미 우리나라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잇따라 4%대로 하향 조정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와 LG경제연구원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5.0%에서 각각 4.7%와 4.9%로 내렸고 한국개발연구원(KDI)도 5.0%에서 4.8%로 하향 조정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5.2%에서 4.3%로 내려 잡았으며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4.5% 이하를 예측했다. 더욱이 한국은행은 하반기 성장률이 3%대로 내려앉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왜 이렇게 됐나?

경제성장률을 후퇴시킨 가장 큰 주범은 역시 국제유가 폭등이다. 모든 재화와 용역의 기초 생산비를 좌우하는 기름인 만큼 기름값이 뛰면 거의 모든 물건값이 뛰고 서비스 요금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므로 경기 후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유가가 10% 상승하면 소비자물가는 0.2% 포인트 오르고 실질성장률은 0.2% 포인트 하락한다. 유가가 90달러에서 130달러로 40달러가량 오르면 산술적으로 성장률은 0.8% 포인트가량 까먹게 되는 셈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도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초 국제유가가 90달러 전후일 때 전망치를 내놨는데 지금은 130달러를 웃돌고 있다. 국제유가가 이 정도까지 갈 줄 몰랐다"면서 성장률 하향조정이 불가피함을 하소연했다.

국제유가의 향후 전망치도 '춤을 추고' 있다. 경제의 불확실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것.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최근 두아비유 기준 국제유가 전망치를 하반기 평균 배럴당 107달러, 연평균 배럴당 105달러로 제시한 반면, 국제유가전문가협의회는 하반기에 국제유가가 평균 120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예측치가 일치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110~120달러 수준에서 유지된다면 하반기 성장률도 예상보다 크게 둔화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유가가 비록 높은 수준을 유지하더라도 올라가는 속도가 빠르지 않다면 경제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한국은행은 지적했다.

◆정부 정책 어떻게 가야 하나

정부는 일단 고유가로 인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서민들의 어려움이 커짐에 따라 '성장'보다 '안정'으로 경제정책의 기조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가장 고통을 받는 이들은 서민"이라며 "물가를 안정시키고 서민의 민생을 살피는 일을 국정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7% 성장,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강국을 상징하는 성장 위주의 전략을 잠시 제쳐놓고 물가관리를 통한 안정에 중점을 두겠다는 정책 전환으로 풀이되고 있다.

물가를 잡으려면 우선 전통적 방식인 '금리 인상'이 고려될 수 있다. 그러나 금리 인상은 가뜩이나 어려움에 빠진 경기를 더욱 후퇴시킬 수 있어 조심스럽다는 지적이 더 많다. 정책당국은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부예금에 대한 지급준비율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 중소기업 총액한도대출을 축소하는 방안 등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물가를 잡는 동시에 경기 부양도 외면할 수 없어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해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방식도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효수 영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물가에 부담을 줄 수 있는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은 곤란하다"면서 "물가안정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면서 중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는 정책을 꾸준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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